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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지점 인터뷰 5탄]: 전소희의 <내일을 위한 시간>(15.10.12)

댄서스라운지 2015. 10. 14. 22:42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한 사람의 분위기가 '시적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저녁은, 대화가 오고가는 두 어시간 동안의 목소리 톤과 질문과 대답은,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의 되돌아봄과 지나온 계절에 대한 반추는, 그렇게 누군가와 함께 한 짧은 시간을 잠잠한 시 한편처럼 떠올리게 합니다. 전소희 안무가와 진행한 두어 시간의 인터뷰가 그러했지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여러분에게는 어떤 시간인지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연습을 하는 시간, 아님 다가올 과제를 열심히 준비하는 시간인지요. 전 안무가에게 그 시간은, 혼자만의 고독으로 찾아 들어가는, 그리하여 다가올 내일에 어떤 화려함도 없을지라도 그 내일을 가볍지 않은 힘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고 여러분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움직임으로 준비하고 싶으시다면 10월 24일 토요일 세시, 전소희 안무가의 오픈 클라스를 반드시-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움직임이 최승자님의 시,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텍스트를 입고, 어떤 괜찮은 시 한 편을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날, 제 시적 오감을 온전히 열어 놓고, 어떤 시 한 편을 쓰려고 합니다.^^ //살롱지기


 

[발아지점 인터뷰 5탄]:

'새싹' 전소희 안무가의

<내일을 위한 시간>

 

인터뷰어:

천 샘 | 댄서스라운지 대표

 

15.10.12. 댄서스라운지

 

 

[천샘 왈(이하 천)]: 작품의 제목과 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전소희 왈(이하 전)]: 작품 제목은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주제의 가장 큰 틀은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우리가 홀로 고독과 마주하는 순간, 쉽게 말해 내면과 마주하는 순간 개인의 존재에 대한 흐릿한 인식, 혼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떠도는 기억의 파편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명확하게 붙잡고 싶어 하는데서 나오는 상실감을 다루려 한다.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는, 새벽 한 시 혹은 두시가 될 수도 있는, 우리가 내면과 마주하는 고독의 시간, 자신을 반성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 그 시간을 얼마나 잘 견뎌내는가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천샘 왈]: 마지막 문장이 아주 좋다 사람마다 고독과 마주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이 내일을 위한 힘이 된다...”

[전 왈]: sns를 보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 같고,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행복을 요구하는 듯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모두가 그렇게 행복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sns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도 이런 고독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지만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그 개인적인 시간이고, 진정한 힘은 그 시간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sns와 멀어지고 있는데... (웃음).

사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또한 그 시간을 견뎌냈다고 해서 내일은 반드시 무언가 달라져 있어야 하고, 희망적이 된다거나, 행복해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내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즉 내일이 행복해야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하루하루를 조금은 무덤덤하게, 기대치가 없다 한들 마주한 삶을 성실히 살아갈 힘이 아닐까.

 

[천 왈]: 깊은 공감이 된다. 그 결론에 이르기 위해 거친 계절들이 짧지 않았을 듯싶은데, 결론에 이르게 된 계기나 예술적 영감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전 왈]: 나는 행복해야 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힘들더라. 나는 이 사람과 똑같이 행복해야만 해-’라고 생각할수록 이질감이 밀려들었다. 그 생각에 휩싸일수록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거지..‘ 하는 생각이... 그렇다면 굳이 행복해야 하는 걸까하는 질문과이 모든 흐름이 정말 진실일까‘, 라는 의심들이 밀려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면, 그 영화의 결론에서 누군가는 주인공 아델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굳이 그녀에게는 그 결말이 비극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삶의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그녀가 겪은 삶이 진실했다는 점에 비추어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 또 다른 희망으로써의 아델의 뒷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패 혹은 비극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소위말하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리고 나는 그것이 실은 모든 사람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면 주인공은 장애인이고, 사랑도 지나갔으며, 모든 게 끝났지만, 오늘을 살기 위해 생선을 굽고 있는 여자에게 번지는 어떤 아련함, , 살아감 이라는 강력한 힘 이 있다. 그게 바로 삶의 아름다움이겠지(웃음).

 

[천 왈]: 위의 답을 갖고 두 번째 질문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넘어가보자. 새내기 안무가로서 이번 작업을 통해 자신이 쫓는 작품 세계-방향에 대해 더 설명해 달라. 아니, 질문을 약간 돌려하겠다. 위의 답을 보니 전 안무가의 작품 주제는 명료하게, ‘삶의 아룸다움에 대한 재해석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전소희 안무가가 정의하는 삶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전 왈]:단순하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과거에 많이 연연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및 현실에 대한 부정이 잦았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과거에 했던 나의 모든 행동들이 당시 나의 최선이었으며, 따라서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역시 수많은 우연의 산물이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태도와 행동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천 왈]: 이제 발레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모던발레로 작품을 짜는 게 이번이 첫 시도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 시대에 발레 전공자들은 클래식 발레를 전공하지만, 자신만의 작품을 하려면 모던발레로 밖에 필히 작품을 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클래식적인 실기를 해오다가 모던한 작품을 짜는 데 부딪히는 어려움은 없는지.

[전 왈]: 발레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현대무용은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해서 표현한다. 지나가는, 어그러지는 순간들의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보니 발레를 하는 나로서는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일그러지고 싶은데, 막상 일그러지고 싶을 때 잘 일그러지지 못하는 자신을 보더라. 일그러지는 순간에도 라인을 찾고 있고... (웃음). 그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조금 힘들다.

[천 왈]: 그런데 억지로 일그러지는 건 더 불편하지 않을까?

[전 왈]: 그런데 나는 그 일그러짐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 내가 습득해온 발레도 아름답지만, 동작이 어그러지는 가운데서 드러나는 뭔가의 여백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흘러가는 움직임 가운데서 스며 나오는 감정을 포착하는 게 좋다.

 

[천 왈]: 그렇다면 작업을 좀더 얘기해보자. 세 명의 무용수와의 한다고 들었는데, 두 명은 발레, 한 명은 현대무용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접점을 찾아내고 있는지?

[전 왈]: 나를 포함한 여자 발레 무용수 둘에 남자 현대무용수 한 명이다. 사실 현대무용수에게 고마운 게, 내가 이런 느낌이라고 말을 하면 그 느낌을 찾아 함께 쉼없이 움직여준다. 거울을 보면서 계속 하니까, 둘의 느낌이 어떤 접점을 찾으면 그 부분을 살리고, 그러다가 순간순간 발레 동작과 만나는 또 다른 접점을 찾은 다음, 이를 연결시킨다. 그림이 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나가는 과정은 참 좋다.

(중략) 생각해보니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뭔가 정형화될 수 없고, 딱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즉 명확하고 딱 떨어지는 동작은 정체성의 움직임적 정의로서 온전하다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감정 또는 움직임이 흐르며 변화하는 순간순간 자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데벨로페 사이드를 했다가 훅 풀어내는 모습이 내가 고민하는 정체성에 대한 움직임적 정의가 될 수도 있다.

 

[천 왈]: 참 공감이 가는 시선이다(웃음). 그렇다면 조금 난감한 질문을 하겠다. 발레라는 분야가 워낙 동작의 정답에 대한 기준이 강한 무용이라 그런지, 이를 맞추기 위한 훈련의 강도와 그에 적합한 몸의 기준을 쫓다 보면, 이것이 야기하는 치열한 미의 기준이 무용수에게 가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본다. 또한 어렸을 적부터 끈임없그런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훈육 아래 노출되는 부분이 바로 무용수의 개인적 자아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드는데...

[전 왈]: 사실 발레라는 분야 자체가 너무 완벽을 추구해서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모양을 만들어야 돼하고 훈육을 받지만 언제나 내 몸에 이질감을 느낀다. 그 기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아무리 완벽해지려고 해도 완벽해질 수 없지만, 거기에 닿기 위해 쉬지 않고 탄듀를 한다. 그 기준과 내가 계속 멀어지거나, 잠시 동안 닿고 떨어질 때 밀려드는 상실감이 크다. 또한 혼자서만 동작을 파고들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있어서도 쉽지 않고,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부분도 크다. 따라서 그 모든 요소들이 무용수를 불안하게 만든다. 즉 기준이 너무 명확하다보니 자신이 그 기준과 부합하지 않을 때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는 것. 그리고 나 역시 그 안에서 상실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너는 있는 그대로 괜찮아-’라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그렇기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은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것에 있어서 참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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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왈]: 솔직한 답변 고맙다. 그럼 그런 질문을 깔고 다시 작품으로 넘어가 보자. 이번 작품에서 음악, 무대미술/설치, 공간 활용, 작품 구성, 춤 동작 등 등 작품의 요소 중, 안무자가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

[전 왈]: 실루엣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존재. 존재하지만 인지하는 것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빛의 조도를 활용해 보여주고 싶다. 손전등의 불빛을 십분 이용할 생각이다. 손전등을 사물을 전체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부분적으로만 비추는데,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고 생각할 때 그것은 있다가 없어지고, 반짝이다가 없어지고, 그런 불완전함, 파편성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천 왈]: 전소희 안무가의 오픈 클라스가 1010() 오후 3시에 예정되어 있다. 사뭇 기대가 된다. 작품을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클라스를 소개해 달라.

[전 왈]: 지금 오픈클라스의 구성을 굉장히 고민 중이다. 누군가는 시를 읽고, 누군가는 움직일 수도 있는데, 내가 이번 작품에 영감을 받은 책은 안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접한, 페트릭 모리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이다. 그리고 그저 막연하게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최승자의 시였고 재미있게도 이 시와 책의 내용과 이미지는 서로가 닮아있다. 오픈 클라스에서는 책과 시의 인상적인 문장들을 움직임으로 형상화 시켜보고 싶다. “파동/진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흐릿하게 인지하는 사람들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잔상들을 위해 시와 움직임을 교차시키는 즉흥을 준비 중이다.

 

[천 왈]: 모두에게 띄우는 마지막 질문이. 안무가로서, 예술가로서 이 작업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혹은 스스로 틔우고 싶은 예술적 발아지점은 무엇인가?

[전 왈]:이번 작품하면서 느낀 게 나는 내 얘기밖에 못하는 구나였다. 나는 고작 내 얘기를 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네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조금씩 시도하다보면 언젠가는 사회적인 얘기도, 우리 주변의 삶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하고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며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체념하는 시간을 접한다. 그것이 오늘날 나의 내일을 위한 시간일 수 도 있다. 우선은 나의 삶을 진실 되게 담아내고 싶다. 그렇다면 어떠한 부분에서 다른 이에게도 와 닿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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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지점 인터뷰 5탄: 전소희 안무가 인터뷰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