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가면 돌들이 있지요.^^ 그중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강물살에 잘 다듬어져 동글납짝한 모양에, 흐르는 물의 윤기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도톰한 돌이 있습니다. 그런 돌을 보면 사람들은 거기에 앉기도 하고, 그 돌의 매끄러운 빛은 시냇가의 찬란한 아우라를 만들어줍니다. 이혜원 안무가와의 인터뷰는 뭐랄까, 모든 모서리가 갈려나간 후, 촉촉한 물기를 입은 단단한 차돌 하나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묵직한 청량감을 예술가에게서 발견한 것은, 그저 기분 좋은 일이었을 수 밖에요.^^ //살롱지기
[발아지점 인터뷰 5탄]
이혜원의 <다시 바라'봄'>
인터뷰어: 천 샘 | 댄서스라운지 대표
15. 11. 1. @ 5Extracts, 홍대
[천샘 왈]: 작품의 제목과 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이혜원 왈]: 작품 제목은 <다시 바라‘봄’>이다. 과거를 바라보며 현재를 다시 바라보고, 미래의 ‘봄’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천 왈]: ‘봄’ 이라는 것은 계절을 의미하나?
[이 왈]: 희망이다.
[천 왈]: ‘봄’이라는 것이 누군가는 나처럼 계절을 떠올릴 수도 있고, ‘바라봄’이 될 수도 있는데, 제목이 중의적 의미를 띄어 해석의 여지가 열린 게 좋다.
[이 왈]: ‘다시 바라 보았다’와 ‘미래의 바라봄’을 원하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싶었다. (잠시 침묵) ‘주제’라고 하기 보다는 내가 작품을 하게 된 이유와 이 과정을 통해 얻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새싹이예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고 무용단을 생활을 시작하면서, ‘홀로 싸워가고’ 싶었고, 그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알 수 없이 흐르는 눈물과 때로는 분노도 오면서 고민이 시작이 되었고.. ‘왜 이런 감정이 생겼을까’를, 내 외면과 내면의 모습 둘 다를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바쁜 일정 속에 사색을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일부러라도 나를 찾자는 생각에’ 도전하게 되었다. 먼저 내 내면을 탐구하고 싶었고, 무용단에 들어간 후로는 내 움직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무용수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도 싶었다. 그리고 나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싶었고, 이를 어떻게 주제로 담아낼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천 왈]: 이혜원 안무가는 전공이 한국무용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트러스트 무용단에서 활동 중인데, 한국무용 전공에서 현대무용으로 전향하는 계기가 있었는지, 현재 트러스트 무용단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나 공연, 1년여의 무용단 활동이 궁금하기도 한데..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린다.
[이 왈]: 현대무용을 하게 된 계기는, 현대무용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즉흥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한국무용을 전공했다는 게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현대무용을 제대로 배워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즉흥에 대한 갈망이 커질 무렵, 트러스트 무용단의 <시스>라는 작품을 봤는데, 내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용단이 나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트러스트 무용단 무용수 지원 공고를 보고 입단하게 되었다.
트러스트에서는 소외된 계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최근에는 보호관찰시설 아이들과 양육권이 위임된 유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공동체아이들과 무용단이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때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 그 작업을 통해 나도 큰 듯하다. 내가 그들에게는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들과 함께 하는 과정이 치유가 되었다. 사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상상이 안 되었는데, 막상 함께 해보니 잘 움직이든 못 움직이든 그 친구들이 움직이는 장면을 보면 울컥하더라.. 그렇게 ‘법문화 페스티벌’이라는 공연에서 보호소 학생들, 판사님들과 등과 같이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또한 장애인들과 공연을 했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닫혀 있던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구나’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들과 나를 내 안에서부터 가르던 차이점이 많이 좁혀졌고, 오히려 춤을 출 때는 내가 그들로부터 더 많은 무언가를 받았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장애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그저 춤추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더라.
[천 왈]: 전인적으로 성장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과정이 이 안무가에게 작품 제목처럼 ‘다시 바라봄’의 시간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작품으로 넘어가 보자. 작품을 위해 ‘예술공방‘ 선정 안무가로서 <투명사회>라는 상당히 쉽지 않은 책을 선택해 읽었다고 들었다. 책과 안무의 주제가 공명하는 방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 왈]: 어떻게 보면 막연하게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을 안고, 이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된 것인데.. 주제를 잡는 게 조금 어렵기도 했고. 그런데 내 안에서 명료화되지 않은 어수선한 마음이 있어서... <새싹이예염! 신인 안무가 시리즈>의 책 발제를 통해 구체적으로 주제를 잡게 되었다. 나에게 적용되는 만큼만 이해를 해서, 책을 통해 내 안으로 쌓여진 것은 있지만, 입밖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데... (잠시 침묵) 책을 통해서는 ‘나는 사회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나를 알기 위해 내 안을 과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외부와 나는 끝없이 연결되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긁힌 상처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고, 이런 스크래치들 때문에 안무를 하고픈 욕구가 생겼음을 알게 되니, 지나온 전부를 좋게 바라보게 되더라.
그런데 하나 아쉬운 점은 책을 보면서 내 문제들, 즉 내가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지 해결이 다 되어 버리니까 더 이상 나를 탐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들여다볼 에너지가 생겨나지 않아서 잠시 멘붕도 왔다.(웃음)
예전에 작품을 짤 때는 어떤 것을 딱 정해서 그 틀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이런 과정들을 거쳐 지금은 내가 변해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의 해결과 상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희망을 바라보는 눈도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그 마음으로 작품을 준비 중이다.
[천 왈]: 작품 주제와 그동안 해온 활동들을 보니 작품이 사뭇 기대가 된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이번 작품으로 넘어가 보자. 안무를 위해 사용하는 자신만의 소스나 안무 접근하려는 방향이 있다면 알려 달라. 혹시 ‘솔로’를 하려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자신에 대한 어떤 깨달음 때문인지?
[이 왈]: 사실 다른 사람과 협력할 역량이 아직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이왕 혼자 하는 김에 어떻게 작품이 나오는지 한 번 보자 하는 것도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이 있다 보니까, 안무에 대한 방향성도 아직 미욱한 상태에서 누군가와의 소통을 바라는 것은 위험한 것 같아서...
[천 왈]: 그렇다면 이번 솔로 작품에서 음악, 무대미술/설치, 공간 활용, 작품 구성, 춤 동작 등등 작품의 요소 중, 안무자가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가?
[이 왈]: 고민을 하다가 나 자체가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작 같은 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형태가 아니라 즉흥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작품을 짜보니 생각보다 힘들더라. 그러면서 ‘나’를 어디까지 열고 또 닫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작품에 나올 소품으로는 ‘장삼’을 사용할 생각인데, 거기서 나오는 느낌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 다만 장삼의 아름다운 측면을 바라지는 않고, 조금은 투박했으면 좋겠다.
[천 왈]: 장삼에 대해 좀더 얘기해달라.
[이 왈]: 장삼은 승려의 웃옷으로 전통작품중의 하나인 승무를 할때 입는 옷이다. ‘한’의 정서가 묻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전통적인 것. 그러면서 신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중첩되는 느낌이 좋아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장삼을 좀더 장삼답지 않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흔히 택하는 장삼의 사용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구상 중이다.
[천 왈]: 그렇다면 관객들이 주목할 것은 이 안무가의 정형화되지 않은 움직임과 장삼 두 가지인가?
[이 왈]: 장삼, 즉흥, 현대무용-한국무용적 안무일 듯.
[천 왈]: 장삼, 즉흥, 현대적-한국무용적 안무. 조합이 매우 흥미롭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떤 음악을 쓸 예정인가?
[이 왈]: 째즈를 좋아하는데, 한 편으로는 구음을 좋아하기도 한다. 내가 한국무용을 해서 그런지, 묵직한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그러면서도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웃음) 다행히 두 가지의 적정선에 맞는 음악을 찾기는 했다.
[천 왈]: 그렇다면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시너지가 있지 않을까 사뭇 궁금해지는데, 한국무용이라는 장르를 작품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 왈]: 움직임은 현대무용적으로 가고 싶다. 한국무용의 특징은 흐름에 서사성이 있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끊임없이 흐르면서 쌓여가는 무언가가 있다. 현대무용은 순간의 휘발성이 있다면 말이다. 나는 한국무용의 서사성을 작품에 가져오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너무 극적이지 않게도 가고 싶고, 그렇게 한국무용이 지닌 분위기를 차용하고 싶은 생각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드는데, 이런 부분을 적극 활용하고 싶다.
움직임에 대해 좀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내가 찾고 싶었던 지점은 <자유함>이었다. 나 스스로 자유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들더라. 내 안에는 흥이 있는데, 이상하게 내가 안무를 하면 그게 잘 나오지는 않더라. 그런데 이것이 내가 너무 이걸 인식할수록 경직되어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을 찾아 작품에 넣고 싶기는 한데... 여하튼 내가 더 끌어낼 수 있는 지점들, 즉 어떻게 하면 ‘나를 좀더 춤추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천 왈]: 묵직하고 담담한, 그러면서도 창의적인 작품을 기대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안무가로서, 예술가로서 이 작업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혹은 스스로 틔우고 싶은 ‘예술적 발아지점‘은 무엇인가?
[이 왈] 사실 어떤 결말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예술가라 하기에는 이르고, 30대 초반을 기대하고 있다. ‘그때 나는 어떠한 예술가로 시작할 수 있을까’, 라는 바람으로 지금은 그 과정을 닦는 심정이다. 그래서 그 과정의 결말이 이 작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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