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RS' LOU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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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벌판- 공연후기]: ‘무대를 지킨다’는 것 (20.9.15)

댄서스라운지 2020. 9. 22. 22:14

[‘무대를 지킨다’는 것]

 


지난 9월 4일과 5일의 주말은 저를 포함한 무용인들과 또다른 어딘가에서 무대를 준비한 누군가들에게 ‘무대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가 새삼 다르게 다가온 시간이었습니다. 공연에 참여한 무용수는 일주일 전 같은 요일에 지방 공연이 잡혀 있었지만, 겨우 일주일 차이로 코로나 광풍을 맞아 극장의 문이 닫혀버렸지요. 혹여 <찬란한 벌판>까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굳이 묻지 않아도 마음조린 일주일을 보냈을 겁니다. 그렇게 저희 공연을 포함한 몇몇 무용공연이 예정된 그 주말은, 극장문이 닫히는 것은 피했지만 소규모이든 객석 점유율이 거의 없든, 어떻게든 무대를 지켜야했던 누군가들에게 ‘무대는 그리고 그 위에선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본 공연의 창/제작진은 2020년 3월, 신천지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관객 여러분의 성원을 뒤로 3회 공연 전체를 닫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6개월을 기다려 다시금 ‘벌판’을 연 지금, 이번에는 3회차 전 공연을 비대면 온라인 공연과 소규모 쇼케이스로 전환하여 비로소 찬란히- 열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공연 링크를 발송하고 쇼케이스를 준비하는 동안, 저희 모두는 너무도 바빴지만 그만큼 정말 기뻤고^^ 감사했습니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댄스플로어를 밟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많은 관객들이 오기를 바란 것도, 박수를 받길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무대에서 추어야할 춤을 이번에는 다 추고 끝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날 헐렁한 극장을 지킨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래야 지난 몇 개월을 쓰라리게 기다려온 예술가로서의 소임이 끝날 것 같았거든요.
 
소규모로 진행된 비공개 쇼케이스는 지난 3월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주신 2030 여성관객 대표들, 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연대단체 및 개인, 그리고 본 공연을 후원해준 마포문화재단 및 무용계 관계자분들과 회차를 나누어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회에는 무용계 미투사건으로 알려진 류00 사건의 피해자 000님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대법원에서의 최종 승소를 축하하는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000님은 객석과 뜨거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본 사건에 적지 않은 역할을 맡았던 <오롯 위드유>는 본인들의 자리를 양보하며 예매자 전원이 온라인 관람으로 대체해주셨고, 대신 풍성한 꽃다발로 마음을 표현해주었습니다. 온라인 공연의 번거로움을 감내하면서 링크를 열어주신 모든 분들, 코로나상황에도 마스크를 쓰고 객석을 지켜주신 분들, 그리고 물심양면 ‘참으로 잘’ 도와주신 마포문화재단, 고맙습니다. 

그날, 마음을 나눌 누군가만 있다면 예술가들은 무대를 지킬 것임을, 그리고 예술은 나아갈 것임을 저희는 깨달았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연주자들이 가라앉는 배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그날, 또다른 어딘가의 무대를 지켰을 누군가들에게도 참으로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조금은 헛헛했을 무대를 움직임으로 가득 채워낸 그날, 무대를 마치고 나온 밖의 거리가 선사하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선명함과 건물 사이사이로 펼쳐지던 넓은 하늘까지. 그날의 우리 모두는 그 어떤 무대보다 선명히, 무대 밖을 감싸 안은 모든 배경과 주변풍경들을, 객석이 빠진 자리 앞에서 선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왁자지껄 공연할 날을 기다리며 이날 우리의 작은 승리를 자축할 날이 오겠지요. 그렇게 치열했던 그 주말을 참으로 잘- 버텨낸 우리 모두에게 수고하셨다고, 안부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