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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벌판- 출연진의 글 2]: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 변화하는 삶과 예술의 풍경 앞에서 (20.8.11)

댄서스라운지 2020. 9. 2. 14:30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 변화하는 삶과 예술의 풍경 앞에서>

서경선 | 예술가 시민

올해 갑자기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7년 동안 살았던 곳인 데다 올해부터 작은 마당에서 자연농법을 실험해 볼 계획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아이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것을 거부했다. 해서 급하게 집 주변의 집들을 보러 다녔고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바로 옆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전에는 이 집이 이렇게 근사할 거라곤 생각을 못 했었다. 막상 이사를 오니 뒤에는 산이고 바로 앞에는 공원이다. 3월이었기에 황량한 나무들이 앞뒤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마치 산장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7년 동안 매해 한 개씩 앞뒤 좌우로 빌라가 세워져 점점 부족한 일조량으로 어둑한 실내에 살다가 눈이 부셔서 일찍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환경이 너무나 새로웠다. 그러면서 주변 환경의 변화가 내 몸과 내 환경에 미치는 놀랄 만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몸의 효율적 관리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실용적인 움직임과 최적의 몸과 기술에 대해 배웠다. 또한 작업의 성취를 위해 내 일상의 생활보단 작품이 우선인 삶을 지향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렇지만 일반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비평준화 반대 거리 시위와 대학에서 여러 다양한 교양과목을 통해 자본과 대중매체, 평등 그리고 여성학에 대해서도 배웠던 경험들이 나에게 자양분으로 남아 내 몸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결혼은 마구 달리던 삶에서 일단 멈춤으로 그동안 내가 살았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춤을 출 것인가? 또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춤을 출 수 있을까? 고민은 참으로 많았다. 그러면서 춤을 일처럼 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소진되지 않고 즐겁게 일하는 춤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환경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물론 충분하지 않고 미진하고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부족한 것도 많고 점점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몇몇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들이 있다. 기존의 시스템대로 살지 않고 선후배보단 평등한 관계, 상대에 대한 존중, 능력 위주 보다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에 초점을 둔 작업 환경을 지향했었다는 것에 대한 회자를 말이다.

2020년 7월 31일. 오롯 위드유에서 주최한 안전한 활동을 위한 무용(예술) 자치규약 만들기 워크숍에 사례발표와 모더레이터로 참여를 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나에겐 고역이다. 낱말이 제때 떠오르지 않을 거라는 공포가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제안이 오면 나는 참여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목소리가 들리고 보이는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발화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데 참으로 위안이 된다. 참여자들은 참으로 많았다. 깊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발언도 들을 수 있었다. 그 현장에서 숨 쉬고 있는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보았다. 교육환경이든 창작환경이든 어떻게 바뀌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얼마나 달라지는 가를 말이다. 또한 환경을 바꾸는 직접적 경험이 주는 자신감은 앞으로도 내 주변 환경부터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번진다. 더욱이 그것이 혼자의 힘으론 할 수 없었지만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벅찬 감동으로 말이다. 열린 광장 아고라가 이제는 벌판으로 찬란하게 나아간다. 이제는 남자들의 광장이 아닌 모두의 광장으로 말이다. 이런 연결된 고리들이 나를 숨 쉬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