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서 발언으로: 무용계, 입에 걸린 빗장을 온몸으로 부수다
천 샘 | 안무가,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위드유
2019년 6월부터 10월까지 지난 4개월은 무용계 안에서 오랫동안 응축된 분노와 뜨거움, 벽을 깨고 나가기 직전의 두려움과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변화에 대한 갈망이 뒤엉킨 시간이었다. 생생히 기억한다. <미디어오늘>에 올라온 “유명 무용수, 26살 어린 제자 성추행해 재판”이라는 기사 제목과 사진을. 떨리는 마음으로 스크롤바를 내리면서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겠지’,라는 나약한 마음과 두려움이 혼재했고, 며칠 뒤 아는 기자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동일 사건의 심층보도에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불문율이자 가장 기본적인 몸가짐처럼 되어버린 무용계에서, 나의 경우 이른바 국내의 예고-무용과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이곳 생태계에서 작동하는 공고한 침묵의 기제를 이해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습득이 덜 되어서인지 떨리는 마음으로 기사를 공유하면서 분노의 앞글을 달았고, 울분으로 밤을 새다시피 한 다음날 아침, 용기를 내어 기사를 공유한 동료의 “저는 피해자의 곁에 서겠습니다”라는 앞글을 보면서 나는 펑펑 울었다. 동료의 그 한마디는 변화를 향한 희미한 시작이었고, 그 희망은 이제 살아 움직이는 개인들이 모여 연대를 형성하고 직접 탄원서를 쓰며, 법정에 가서 긴 재판을 방청하면서 무용계의 자정과 변화를 요구하는 실질적인 개혁과 변화의 근육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과정은 지금 이순간, 무용계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본 발제는 손을 내밀어 연대하기보다 뒷걸음질 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무용계의 권위적인 문화 안에서 오롯#위드유를 중심으로 시작한 연대 활동을 돌아보고, 이를 통해 무용계는 어떻게 침묵의 섬이라는 오명을 벗고 입에 걸린 빗장을 온 몸으로 부수기 시작했는지 짚어본다. 그리하여 이 과정을 통해 과거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지점들을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무용계'라 부르는 ‘무용계의 진정한 범위는 어디인가’ 라는 질문과 둘째, 초보 연대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무용계의 연대활동 방식을 통해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는, 그러나 지금 이 시각 치열하게 발화의 지점을 모색하는 다른 예술계에 제시할 운동의 방식은 있는가, 이다.
성명서와 오롯#위드유의 시작: 낡은 침묵 속에 누적된 고통을 끌어안는 발언으로
문화예술계의 여러 장르 중 무용계는 '갈라파고스'라는 오명이 붙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법과 원칙과는 거리감이 있는 그들만의 섬으로 인식되어 왔다. 2017년 미투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당시 여러 장르에서 미투 발언이 줄을 이었으나 무용계는 발화하지 않았다. 아니 발언을 했으나 연대적 움직임을 형성하지 못 한 채 묻혀 버린 것이다. 2017년 무용웹진을 통해 발언했지만 조용히 묻힌 무용학 박사의 최초의 미투를 비롯, 한예종과 가천대 무용과의 스쿨 미투, 국립국악원 사태 등 무용계의 미투 사례는 지난 2년 동안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각각의 사례들은 폭력을 거부하는 하나의 단결된 힘으로 응집되지 못했고, 그저 조만간 묻혀버릴 개별적인 사건들 정도로만 치부되는 듯했다. 스승과 제자간의 도제 관계를 통해 실기를 습득하는 무용계의 특성상, 신체적 폭력은 구성원들이 장기간 노출되어 전혀 ‘낯설지 않은’ 문화였고, 이에 반해 폭력의 구조에 저항하는 강력한 연대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무용계가 겪어본 적이 없는, 다시 말해 구성원 모두에게 ‘낯선’ 문화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시작이 된 성명서로 되돌아가서, 앞서 언급한 기사를 공유한 그날, 필자가 속한 단체인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하고 우리의 분노와 황망함, 지난 시간동안 누적된 눈물과 이를 넘어서는 변화의 의지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단 성명서의 톤은 가해자를 규탄하고 법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는 일반적인 방향보다는, 본 사건의 피해자뿐 아니라 보도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은 무용계의 동료들과 주변 관계자들부터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음을 명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따라서 더 이상 이러한 폭력을 용인해서는 안 될 우리들의 의지를 천명하고 무용계 구성원 모두가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자기성찰 및 책임 있는 실천적 행동을 수반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성명서의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논의에 참여한 12명 전원의 실명을 걸고 발표하기로 합의하였다.
민감한 기사의 공유 한번에도 주변의 눈치가 보이고 ‘좋아요’를 누르는 일에도 찍힐까봐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무용계에서 열두 명 전원의 실명을 내건 성명서의 위력은 컸다. 성명서는 그동안 누적되어온 무용계 구성원들의 정신적 피로와 고통, 오랫동안 쌓인 무력감을 대변하며 깊은 위로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기명 서명은 받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연대서명이 제발 50개만 넘어주길 간절히 바란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성명서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였다. 성명서는 803명의 개인과 84개 단체들의 공개서명이라는 묵직한 숫자를 안고 첫 공판과 함께 당당하게 재판부로 입성하였다. 그 후 오롯은 ‘오롯#위드유’라는 이름으로 무용계 성폭력 반대 및 성평등 예술 환경을 위한 연대 대책위를 조직, 이번 사건의 엄정한 판결을 비롯, 무용계의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고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무용계의 미투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반성폭력연대의 시작이었다.
입에 물린 빗장을 열고 행동의 발언으로: 1, 2차 재판방청연대
성명서는 무용계 전반의 적극적인 지지와 공감을 얻었으나 몸으로 직접 참여하는 실질적인 행동의 단계, 즉 가상의 세계인 sns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사건을 대면하고 전 재판 과정을 지켜볼 연대행동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연극계와 성폭력 관련 전문기관들의 자문을 받고 안희정, 이윤택 사건의 미투연대 진행방식을 참조해 오롯#위드유는 첫 공판의 방청연대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기사를 공유하는 데도 신경이 쓰이는 무용계의 분위기 속에서 법원으로 찾아가 재판을 방청하자고 제안할 때 과연 몇 사람이나 올 것이며, 또한 신청 인원이 턱없이 적을 경우 이 숫자는 오히려 연대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겠는가, 라는 현실적 부담감이 존재했다. 숙고를 거쳐 아무도 신청하지 않을 경우 대책위라도 지켜보고 오겠다는 각오로 1차 방청연대를 강행하였으나 예상한 대로 신청 인원은 많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총 9명이 신청했으나 개인적 이유로 4명이 불참해 첫 재판은 대책위를 포함하여 총 9명이 참여했다. 이는 성명서에 서명한 900명에 가까운 연대인들 중 딱 1%가 되는 숫자였고, 이것이 무용계 반성폭력연대인 오롯#위드유가 마주한, 그리고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마주해야할 냉엄한 현실이었다.
1차 공판이 진행되기 전, 재판정을 사전 방문해 연대인들이 모일 동선과 재판정 위치를 확인한 뒤 7월 17일 오후 3시 10분, 무용계 미투 사건 관련 첫 방청연대가 진행되었다. 막상 법원에 도착해보니 재판정에는 본 사건을 처음 보도한 기자들과 피해자의 가족들이 미리 와 있었고, 방청연대 사이트를 통해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를 지지하기 위해 달려온 젊은 무용단체도 있었다. 연대는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재판정의 맨 앞줄에 앉았고, 검사는 피고인의 기소 이유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날, 검사의 기소 이유를 듣는 것은 방청인들 모두에게 충격이었는데, 무용계 피라미드 구조의 맨 꼭대기에서 롤모델이 되었던 스승에 대한 환상이 철저하게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1차 방청연대의 소식은 sns를 타고 번져나갔고, 첫 연대의 적은 숫자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이제 막 행동하기 시작한 연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직접 재판에 갈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무용계의 구성원들은 용기를 얻었다는 평이 이어졌고, 한 달이 지나 2차 방청연대를 모집하자 확실히 신청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무용계가 보여준 이 변화는 주목할 만한데, 이 속도와 참여 인원의 증가가 미래의 무용계에 다가올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재판은 피해자 대질심문 때문에 두 시간을 꼬박 재판정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연대인들은 함께 묵묵히 기다렸고, 공판이 끝난 후 각자의 무용실로, 저녁 연습으로, 레슨 일정과 집으로 돌아갔다.
주변에서는 계속 조언했다. 꽹과리를 치고 퍼포먼스를 하면서 재판정 앞에서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라고. 하지만 연대 행동을 진행하면서 오롯#위드유가 치열하게 깨닫게 된 사실은 실질적인 연대 행동은 실무진들이 지닌 여력만큼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 연대로서의 오롯#위드유는 연대 행동을 처음 시작하면서 밀려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상황들에 대한 낯설음과 당혹감을 감당해야 했고, 이와 동시에 반드시 재판을 지켜봐야한다는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것만이 우리가 지닌 목소리의 최대치였다. 때문에 방청연대에서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자리를 지키며 재판을 방청했고, 재판이 비공개일 경우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우리가 목격한 사실을 최선을 다해 페이스북에 기록했다. 이 과정을 통해 오롯#위드유는 무용계를 관통해온 침묵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위드유 멤버들과 신청한 연대인들 모두의 용기를 모아 재판 과정을 오롯하게 지켜보는 행동의 발언을 만들어내었다. 그런데 그 발언이 만들어낸 파장은 가볍지 않았다. 우리처럼 이 모든 과정에 낯설었던 무용계의 동료들은 우리가 나아가는 모습에 감화되어 함께 법정으로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마다 일의 진행방식이 있고 할 수 있는 만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안에 진정성이 있다면 연대는 나아간다.
“8월 31일 ·
누군가는 물을 것입니다. 왜 자꾸 그 자리에 가 앉아 있는지.
바깥의 더위는 수그러들었지만 건물 안의 더위는 아직 푹푹했던 그날, 우리는 통성명을 할 시간도, 끝나고는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으며, 서로 얼굴도 배경도 직업도 모른 채, 그저 함께 복도를 빼곡히 채우고 앉아 두 시간 여를 기다렸습니다. 다만 우리의 기다림이 피해자가 증언을 하다 멈칫하는 순간이 오면 두려움을 떨쳐낼 용기를 주길 바라면서요.
연대 행동은 생각보다 많은 액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춤을 추는 우리에게는 실상 가장 적은 액션을 요구합니다.
가서 집중해 듣는 것.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는 꽹과리를 울리지 않고, 목청과 핏대를 높이지 않고,
그저 가장 단순한 목격의 행위만을, 지금 최선을 다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술가이기 전에 시민으로서 이 사건을 올바르게 직시하고자 하는 이들은 늘어났고, 가야할 길은 어제보다 확실해졌으며, 어쩌면 가장 단순한 그 행위, 즉 이 사건을 흔들림 없이 지켜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는 더이상 수그러들기 힘든 불처럼 우리가 몸담은 생태계 안에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겠지요.
때문에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의 페이스북에서 퍼옴.
사건이 공론화된 올해 6월, 오롯#위드유 하나였던 무용계의 미투연대 단체는 이제 젊은 무용인들의 책읽기 모임에서 시작해 무용계의 담론을 만들고자 하는 ‘페미플로어’와 눈물 나는 폭력의 대물림을 멈추고 무용인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자치규약을 만들려는 ‘약속하는 언니들’로 늘어났다. 선명한 목표를 갖고 침묵의 빗장 부순 그들은 강연을 열고 몸의 규약을 새로 쓰는 워크샵을 조직하면서, 오롯#위드유와 함께 무용계 반성폭력연대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두려움의 빗장을 부수고자 몸부림치지 않았으나 빗장은 스스로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아가는 데 집중하다보니 빗장이 이미 부서져버린 것조차 몰랐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흐름은 현재 오롯#위드유에서 진행 중인 탄원서 모집 과정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탄원서와 일어서는 개인들. 초보 연대를 위한 대안은 있는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류00 대표 사건은 10월 16일에 마지막 공판을 앞두고 있고, 오롯#위드유는 한 달의 모집기간을 갖고 개인이 직접 쓰는 탄원서를 접수받기 시작했다. 탄원서 신청인의 정확한 숫자는 현재 진행 중이므로 공개할 수 없지만 첫 방청연대의 힘겨운 시작에 비하면 속도도, 인원도 괄목할 만큼 늘었다. 그리고 이것이 지난 4개월 동안 지속해온 연대행동의 가장 커다란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은 말했었다. 성명서 때처럼 오롯#위드유 차원에서 탄원서를 진행한다면 흔쾌히 서명하겠다고.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연대행동이 착실한 성과를 쌓아왔으므로, 오롯#위드유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탄원서를 발표하고 서명을 취합한다면, 많은 이들이 참여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성명서에서 <무용인 여러분께 드리는 당부>의 대목에는 아래의 구절이 있다.
“우리가 입을 열기 시작해야 비로소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변화는 거대한 형태로 ‘주어지기’ 보다 어렵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쌓아나갈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때문에 무용계의 지형을 바꾸는 진정한 변화의 시작은 개개인이 직접 일어서는 법, 다시 말해 오롯#위드유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써내려간 성명서에 수많은 구성원들의 연대서명을 받아 제출하는 방법보다는, 무용계의 개개인들이 서툴더라도 직접 입을 열어 써내려간 탄원서들이 하나둘 쌓이는 과정에 달려 있다. 신청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 과정은 무용계가 드디어 침묵에서 발언으로 돌아서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개인 탄원서와 한줄 탄원서를 포함, <100인의 탄원서>를 목표로 탄원서를 모집하고 있고, 희망적인 사실은 탄원서 모집 공고를 올린 후 신청인들에게 양식을 발송한 첫날, 채 두세 시간이 지나지 않아 첫 탄원서가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탄원서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감사할 것이다. 본 사건의 기사를 공유한 아침에 지인이 페이스북에 남긴 한 마디가 변화를 향한 시작이었다면, 탄원서 양식을 발송한 지 겨우 몇 시간 만에 도착한 뜨거운 탄원서는 맨 처음 희미했던 희망이 올바른 변화를 향한 준엄한 용기의 불꽃이 되어 돌아오고 있음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 글을 마감하며 서두에 던졌던 두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이번 미투 사건을 통해 드러난 우리가 ‘무용계’라 부르는 ‘무용계의 진정한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성명서를 통해 드러났다. 성명서를 제출할 당시 우리는 소속(무용/연극/미술 등등)을 써달라고 물었는데 그 소속에는 이른바 무용씬에서 자주 보지 못한 수많은 ‘무용’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무용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실은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어왔음을,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입시경쟁과 콩쿨 입상, 지원금 경쟁과 해외진출이라는 몇몇 떡밥을 놓고 졸렬한 피라미드를 형성하고 있는 무용계의 위계구조 안에서 자신의 꿈을 지키고자 작은 단체를 만들고, 생계를 위해 학원을 꾸리고, 크고 작은 공연들을 이어가며 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개인들은 늘 있어왔다. 그리고 성명서에 서명한 참으로 많은 이들이 ‘바로 그 무용’이었고, 무용계에서 자주 이름이 거론되는 소위 스타안무가들의 이름은 실상 많지 않았다. 또한 그 동일한 ‘무용’인들이 바로 지금 이 시각 성명서를 쓰기 위해 고민하며 고통스러운 무용계의 현실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마지막 질문으로 돌아가서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는, 그러나 지금 이 시각 치열하게 발화의 지점을 모색하는 다른 예술계에 제시할 수 있는 운동 방식은 있는가, 라는 물음이 있다. 이제 연대 행동의 중간지점을 지나며 말할 수 있는 점은, 자신이 속한 예술계가 안고 있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인정하되, 다만 아직 닥치지 않은 불이익을 미리 두려워하지 않는 현명함으로 나아가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무용계는 연극계나 영화, 문학계와는 달리 글의 언어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참여가 예전보다는 활발해졌지만 다른 예술계처럼 작품의 주요 주제도 아니다. 더군다나 도제관계를 바탕으로 실기를 습득하는 방식 상 구성원들은 장기간 위계 문화에 길들여져 왔고, 때문에 권력에 맞서는 방식에는 더더욱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최악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무용계의 반성폭력연대는 지금 이 시각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이 모든 과정에 익숙하지 않았던 개인들이 모여 서로 소통하고 치열한 논의를 통해 내딛는 발걸음들이 무용계 내부로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가 자문을 받으러 서울시성평등지원센터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이러한 조언을 들었다. 연대 안에서 모인 개개인의 능력이 모두 다를 것이고 사건에 대한 입장차이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활동가가 앞장서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함께 논의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야한다. 그 과정을 거치다보면 누군가는 도약하여 일어서게 된다. 그 과정을 허락해야 한다. 그리하여 오롯#위드유는 이 과정을 통해 일어서는 누군가들을 우리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뜨겁게 만나고 있다.
“나는 사랑하노라. 사람들 위에 걸쳐 있는 먹구름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과 같은 자 모두를.”
-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차라투스투라의 머릿말
무용계의 폭력과 상처를 씻어 내릴 정화의 빗방울을 가슴 속에 품은 이들을 우리는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각각의 빗방울들은 지난 4개월의 여정을 통해 찬찬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먹구름이 거대한 비가 되어 무용계를 흠뻑 적시기를 열망하며, 또 다른 예술계에서 정화의 마중물이 될 예술가들의 오롯한 연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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