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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살롱 이브닝: '인간예찬']: Bed Island - 김지정

댄서스라운지 2018. 8. 4. 16:27

이번주 월요일 안은주 안무자의 <우연한 여행자>에 이어 오늘은 김지정 안무자의 <Bed Island >를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올 해 초, 세 젊은이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소식을 기억하시는지요. 어느 새부터인가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약자충’에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원치 않음에도 끌려가듯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책임에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지정 안무자의 시선을 통해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 젊음과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 병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인간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살롱지기




Bed Island

김지정 | 2018 살롱이브닝 안무자

어린 시절 나에게 1월 1일은 설레임 그 자체였다.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린다는 것, 내 삶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던지.
그리고 2018년 1월 1일, 나는 세 명의 젊은이가 새해를 맞이하며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뉴스기사에 더 눈길이 가는 나이가 되었다.
맑은 눈망울의 어린아이, 보드라운 털을 가진 강아지, 나긋나긋한 관절, 한 없이 유연한 신체.. 젊고 새롭고 연한 것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연상하기란 너무나 쉽다.
그러나 가난과 질병과 나이듦은 아름다운가 아니면 아름답지 않은가. 예술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나는 아름다움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의미를 찾고 있는가. 아름다움과 의미는 대관절 연관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아픈 몸을 살다
작품을 준비하며 댄서들과 함께 아서 프렝크의 <아픈 몸을 살다> 로 스터디를 진행했다. 책은 현재의 나에게 노인이 된 미래의 내가 찾아온다는 상상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미래의 나를 만났을 때 가장 놀라게 될 일은 ‘내가 미래에 심각하게 아프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안무가이자 댄서로서 질병과 부상과 노화는 꽤나 두려운 일이다. 댄서들이 새해 인사로 ‘올해도 부상없이 화이팅’ 식의 덕담을 주고받거나 부상으로 춤을 못추게 된 이들이 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며 꿈을 포기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부상, 몸, 춤, 돈벌이, 작품, 자신과 타인의 기대 등등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척 아프게 되고 난 이후에 우리는 춤을 출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인가.
젊고 건강한 그 짧은 시간동안 고통에 관해 화려한 테크닉으로 말하고, 행복에 관해 유려한 춤사위로 말하는 것이 끝나고 나면, 늙고 병들게 된 무용수는 무엇을 말할 수 있고 어떤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건강함’은 이미 예찬 받고 있다
[인간예찬]이라는 올해의 살롱이브닝 공연주제를 마주하며 심각한 환경문제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고, 이웃의 개도 잡아먹고, 사람에게 미사일도 쏘고, 여전히 소수집단을 혐오하는 ‘인간’에게 ‘예찬’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세 안무가는 예찬할만한 ‘인간’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을 가지고 있다. 베드 아일랜드팀은 이번 작업에서 인간의 범주를 동물보다 낫고 지구상에서 가장 이성적이며 다비드 상처럼 근육질의 튼튼하고 젊은 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하루하루 노화하고 질병을 경험하며 또다른 환자를 돌보게 되는 ‘인간’ 그리고 ‘댄서’로 의미를 제한하였다. 또한 ‘예찬’이란 사회적 찬사와는 거리가 먼 뜻으로 인간이 자신의 몸과 질병을 주체적으로 경험하며 자신의 아픈 몸에서 때로는 고통을 솔직하게 읽어내고 때로는 건강할 때와는 다른 의미의 경이로움을 발견해 나가는 개인적 과정을 의미한다.


어른은 그렇게 웃지 않는다
소장용 사진은 한 사람이 인생 속에서 어떤 표정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왜 저렇게 순진하게 웃고 있는지 뭐가 그렇게 신이 나고 걱정 하나 없는 표정인지, 어떤 시기에는 웃음이 왜 그토록 가짜 같은지, 더 이상은 왜 그 때처럼 웃을 수 없는지.. 사진 속 수백명의 나는 같은 사람들일까 다른 사람들일까.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지 우리는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부러워하는 것인지 아닌지 왜 때때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그런 생각들은 성숙하지 못한 것인지 어른이 되어서 행복하다면 무엇이 그렇고 어린아이의 웃음은 왜 보는 이를 단숨에 무장해제 시킬만큼 이쁜 것인지. 작품의 도입부는 이런 질문들이 관객들을 불편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구성했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과 세상의 지난한 고통이 공존하는 순간들도 잡아내고자 했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세계를 산다
베드 아일랜드란 침대가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환자가 고립되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시간성을 의미한다. 이 침대섬(Bed Island) 은 괴롭고 외로울 수도, 아름답거나 편안할 수도 있다. 침대섬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공간인 동시에 추상적이고 경계가 모호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우울증 환자에게는 이 세계 전체가 침대섬일 거라고 가정했다. 연기를 하듯 멋진 옷에 예쁜 양말을 신고 모자를 쓴 채 돌아다녀도 우울한 인간이란 명동 한복판에 잠옷을 입고 서있는 것처럼 누추하고 벌거벗고 흐리멍텅하다. 우울한 정서를 무대 위로 올리는 작업은 안무가나 댄서에게 모두 쉽지 않았다. 지루하도록 느리게 흘러가는 우울증 환자의 시간을 날 것 그대로 가시화시키고자 했다.


작년에 댄서스라운지에서 스터디를 하다가 자살을 시도하는 타인에게 얼마나 관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 사람이 살만한 자격이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일까 내가 너무 슬퍼지는 것이 본능적으로 싫기 때문일까. 이번 작품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타인의 삶에 또 하나의 고통을 추가한다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세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서 대부분의 인간은 나이와 함께 더 가난해지고 아파가고 노동에는 끝이 없으며 더 많은 지인들이 죽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인간은 아름다울까. 우리의 삶은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 한강대교 위에서 차갑게 일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래도 인간에게 긍정할 것이 남아있는지, 인간의 시간 속에 ‘예찬’이란 방점을 찍을 곳이 어디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