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살롱이브닝: '인간예찬']
'셀프 인터뷰 1탄:
'배웅가는 길'의 천 샘
[질문]: 이름과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해.
[천샘 (이하 천)]: 내 이름은 천 샘이고, 춤추는 여자사람이야. 어렸을 적에는 내 이름 말하는 걸 엄청 싫어했거든. 이름이 좀 특이하잖아. 또래 아이들에게는 한마디로 놀림과 지탄의 대상이었지. ‘샘표간장’ ‘똥샘’ 등등. 그래서 누군가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게 싫었던 적도 있어. 근데 이제는 이 이름 때문에 나쁜 짓하고는 못살겠다 싶고... 그래서 내 이름 말할 때는 쬐금 소심하게 말하면서 그럭저럭 살고 있어. 그냥 재미나게 춤추며 사는 이름 특이한 여자 사람?
[질문]: '오후의 예술공방’은 어떤 그룹이야? 무용단체? 안무자그룹? 다들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감성충만 지식저렴 예술가들을 위한 초경량 지식투척 프로젝트!’라는 설명이 단체 앞머리에 따라붙던데 도대체 무슨 단체고 넌 거기서 역할이 뭐야?
[천 왈]: 나는 흠.. 친구들과 그 단체를 만들었어. 2013년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서울탄츠스테이션이라는 여러 댄서들이 모인 댄스센터에서 다양한 장르의 춤꾼들을 만나게 됐거든. 그곳에서 어울리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다 보니 이렇게 수다만 떨지 말고 우리 한 달에 한 번씩 책이라도 읽으면 어떨까, 하고 시작한 모임이 여기까지 온 거야. 벌써 올해로 5년째네. 하하! 여튼 다들 되게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1년이 되던 2014년 4월에 ‘세월호참사’가 터졌어. 사건을 보면서 절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사건이 터지자마자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임시 추모식장에 단체로 조문을 다녀왔지. 그걸 시작으로 1년을 준비해서 <세월호 1주기 추모공연: ‘팽목의 자장가’>를 단체 이름으로 올리게 된 거야. 사실 우리는 인문학 스터디 모임을 표방하고 있어서 안무자그룹이나 무용단체 이런 성격은 아니었어. 그런데 그 공연이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고 여러 매체들에 보도되면서 무용제에도 초청되고, 그때 내가 만들었던 작품이 <광장극장 블랙텐트>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무용수들도 당연히 공방 사람들이라 자연스럽게 그런 일련의 활동들로 이어지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거야.
사실 우리가 원래 추구하는 건 책 읽는 거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무조건 책을 읽어. 공연을 올리기로 할 때는 더 책을 읽고, 스터디-발제-워크샵 등을 통해 안무자가 작품으로 풀고자 하는 생각을 여러 결로 풀어서 주제에 접근해. 아직까지 그 룰은 바뀌지 않았고. 농담이 아니라 어제도 낮 한시반부터 여섯시까지 중간에 십분 쉬고 안무자 워크샵이랑 스터디했어. 쩝. 그런데 그 시간들이 쌓이다보니까 사람들 생각의 결이 비슷해졌다고 해야하나? 다르지 않은 방향을 보게 된 것 같아. 동료이기 전에 먼저 친구들이 되었거든. 정말 필요한 수다친구 같은... 내 경우 한때 육아에 지쳐 너무도 절실히 수다를 떨 친구가 필요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스터디하면서 수다 떨려고 만났다 해도 거짓말이 아니야. 아하하하!
참고로 그 사이 결혼한 사람만 4명이 되었는데 스터디 때 아기도 데리고 오고 남편도 데려오고 기저귀 갈면서 귀동냥으로 듣기도 하고 그래. 작년에 서울문화재단 최초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아기와의 즉흥’이라는 워크샵을 4개월동안 진행했거든. 사실 그 워크샵 아이디어가 당시 우리 안에 36개월 미만 아기만 3명이나 있어서 나왔던 거야. 다들 춤만 추다가 갑자기 육아하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 그래서 아기들을 무용실로 데려와 이 괴로움을 타파해보자고 짱구를 굴렸지. 꿈은 정말 원대하게 꿨는데... 쩝. 엄청 고생했어. 으흐흐흐~! 여튼 그래서 우리는 삶과 초밀착된 생활형 예술단체라고 해야 할듯. 다른 팀들처럼 안무자 그룹 이런 것보다는 그냥 '생활확장형 예술단체'가 내가 보기엔 정확해. 때문에 생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적 이슈를 자연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다고 해야할까나...
[질문]: 흠. ‘오후의 예술공방’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고 사회적 이슈를 춤으로 풀어내는 게 목표라고 들었는데 들어보니 생각보다 이유가.. 하하하. 하지만 각자 성향도 다른데, 춤으로 그러한 현안들을 풀어내는 게 쉽지는 않잖아. 어떻게 보면 골치아픈 작업이라 댄서들은 싫어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대표라서 다른 사람들한테 시키는 건 아니야?
[천 왈]: 내가 시키나...? 흠... 그럴 수도. 나중에 다른 인터뷰들 읽어보면 알겠지. 그때는 석고대죄해야할 수도. 히힛! 여튼 그렇다손 치더라도 공방 사람들의 성향적 특징을 보자면... 내가 느끼기엔 공방에 오는 예술가들은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야. 사회 부조리에 관심이 많고,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침착한데 삐딱이 기질도 있어. 나부터.^^ 한 예로 우리 안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로 오랫동안 일한 가족을 둔 친구들, 아님 대안학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만 네 명 이상이야. 가족의 영향이든 자신의 선택이든 춤 외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인 예술가들이 꽤 많이들 모여 있는 곳이 공방이야.
참고로 내년 살롱이브닝 주제가 동물권을 주제로 한 ‘에코브릿지(생태이동경로)‘인데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다보니 그렇게 된 거야. 스터디 끝나면 심심찮게 하는 얘기들이 멍멍이, 야옹이 자랑이거든. '우리 아이는 이렇게 방자하다. 나를 요따구로 업수이여긴다'하며 서로 사진들을 보여주며 얘기하는데, 우리 멍멍이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고 또다른 친구네 멍멍이는 최근에 수술했어. 그러다가 나는 최근에 펫샵으로 보내지는 새끼들을 낳는 모견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물보호단체로 가 그 아이를 입양했고... 그런 삶의 주제들을 얘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공연 주제가 잡힌 거야. 우리는 단체의 ’정기 공연‘을 하기 위해 일부러 주제를 잡지는 않아. 그렇게 하면 공연이 그저 단체 존속을 위한 숨 막히는 작업이 되어 버려서... 그래서 1회, 2회, 3회 이렇게 안 쓰고, 살롱이브닝 앞에 년도를 붙여서 [2019 살롱이브닝: '에코브릿지'] 이런 식으로 그 해의 시대적 화두를 푸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다행히 우리를 화나게 하는 문제들은 많아서 아직까지는 사회적 발언을 하는 공연이 하고 싶네. 헤헤헤~^^
[질문]: 그럼 본격적으로 이번 공연 얘기를 해보자. 이번 공연은 제목이 ‘인간예찬’이야. 1회는 '세월호 1주기' 추모, 2회는 ‘혐오범죄’ 고발. 이번에는 ‘인간에 대한 예찬’. 언뜻 들으면 ‘청춘예찬’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꽤 말랑말랑해 보여. 이게 우리 사회와 무슨 연관이 있으며 정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어?
[천 왈]: 사실 이 공연은 2016년에 기획된 거야. 혐오범죄를 고발한 [2016년 살롱이브닝: ‘폭력소환장’]이 원래는 예정에 없었고 이 공연이 잡혀 있었어. 당시 우리 안에서 임신한 사람이 둘이었거든. 그래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거룩한 임신 과정!을 통해 몸소 체험한 댄서들이 작품으로 풀어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기대를 품었지. 아하하하~! 이른바 '우리의 체험적 진실이 인간에 대한 자발적 예찬으로 이어지게 되리라!!'는 어마무시한 기대를 품고 기획했었지만... 흠.
당시 시국은 박근혜 정부 아래 사회전반이 매우 암울하고 험악할 때였어.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졌고 여성과 약자, 반려동물을 향한 강력 혐오범죄들이 매일매일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었어. 한마디로 도저히 '인간을 예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그 기획을 접고 당시 가장 자주 나오던 키워드인 ‘혐오’로 변경해서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지. 변경하니까 예술적 외침이 가장 필요한 지점을 건드린 것 같아 맘은 편한데, 한편으로는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쫄딱 망하겠구나 싶었어. 말은 못했지만 공방 친구들에게 넘 미안했고... 암울한 주제, 한마디로 티켓을 줘도 안올 주제라...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포털사이트를 통해 진행한 펀딩이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전회가 매진되었고 공연 후 객석평이 상당히 좋았어. 그래서 그때만 생각만하면 공방 친구들에게 참 고마워. 실패를 담보한 어둠에도 불구하고 함께 달려가줘서. 응헝헝헝헝~! 그리고 그때 우리가 인간의 어둠에 대해 논했기 때문에 그 작업을 바탕으로 이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떳떳하게 논할 수 있겠다, 싶어.
참고로 조금만 더 설명하자면, 다행히 정권이 바뀌고나서는 '적폐청산'으로 대변되는 시대정신 아래 지금 이시각 미투운동으로까지 변화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잖아. 이 모습은 인간의 양심이 살아 있다는,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하거든. 권력을 쥔 자들의 만행들을 멈추려는 용기 있는 고발과, 이들을 보호하려는 지지와 연대가 우리 사회를 전보다 높은 도덕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믿어. 국격도, 시민의식도 다 같이 성장하는 시기인 것 같아. 그래서 바로 지금 이 시기에 ‘인간의 아름다움’, 한번쯤은 ‘예찬 받을 만한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논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질문]: 그렇다면 작품 얘기 좀 해줘. 어떤 작품이야? 무슨 얘기를 할 거야?
[천 왈]: 내 작품은 ‘배웅가는 길’이야. ‘수만번의 배웅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을 마중나가게 된다‘는 배웅과 마중이 결국에는 연결된 하나의 길 위에 서 있다는 이야기. 헤헷^^ 장르는 컨템포래리이고, 굳이 현대무용의 틀에만 얽매이지는 않으려고 해. 막춤과 아프리칸 댄스의 흥을 섞으려고 하거든. 얼마나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질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가감없이 부탁해.
[천 왈]: 글쎄... 좀 생뚱맞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춤을 추는 과정이 '상처'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이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춤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은 어떤 벅차오름이자 설렘, 다가가고픈 꿈같은 무엇이었을 거야. 좋은 움직임에는 다가가고 싶은 매력이 있고 보는 이들에게 ‘나도 춤추고 싶다, 저렇게 아름답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잖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를 포함해서 춤추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춤을 추는 게 더이상 즐거움이 아닌 거야. 대신 약간의 아물지 않는 상처도 곪아 있는, 아주 오래된 현실이 있지. 며칠 전 안무자워크샵 때 즉흥하려던 걸 접고, 한시간반 내내 미리 짜놓은 안무를 연습하면서 땀을 뻘뻘 흘린 이유도 그거야. 동작을 습득하고, 해석하고, 그걸 다시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풀어내면서 차오르는 기쁨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그니까 몸이 착실하게 동작을 습득해가면서 내 부족한 움직임을, 그리고 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나'라는 미완의 존재를 긍정하는 과정. 그리하여 결국에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구현해낸 자신을 수줍게나마 끌어안고 예찬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난 이번 공연이 출연진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보러와주실 모든 분들에게도 그런 따뜻한 자기긍정과 주변에 대한 신뢰,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갈 공동체에 대한 기대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삶에 대한 예찬. 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겸손함을 잃지 않는 치열한 기쁨 같은 게 세 작품 곳곳에서 뿡뿡!! 뿜어져 나왔으면 좋겠다고나 할까?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를 감사하게 하고,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시간들을 좀더 예찬하고 기대하게 했으면 좋겠어. 쑥쓰럽지만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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