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발아지점 인터뷰]
김은경의<Plastic Innocent City>
인터뷰어 | 천 샘 (오후의 예술공방 대표)
2017. 8.12. 한낮 @댄서스라운지
[천샘 왈(이하 천)]: 작품의 제목(혹은 가제)과 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김은경 왈(이하 김)]: 작품 제목은 Plastic Innocent City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단어들의 조합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내 경험담이다. 내가 좋아하던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사람과 나는 이어지지 않았다‘이고. 나 혼자 상대가 여자친구가 없는 줄 알고 좋아하면서 그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했더라. 그런데 알고 보니 그에게는 오래된 연인이 있었고... 내 상황이라서 그런가 할 때마다 감정이입이 잘 되고 만들면서도 쑥스럽고 그렇다(웃음). 이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다양한 소스들을 갖고 작업 중에 있다.
[천 왈]: 그렇다면 Plastic Innocent City라는 것은 (사랑에 관해) 스스로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순결하고도 이상적인 도시’, 즉 인공적인 사랑의 낙원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한데... 사실 김은경 안무가의 서류심사표를 보면 작품에 쓰려고 하는 오브제들이 기존 현대무용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오브제 사용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오브제의 사용이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해 독보적으로 참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다양한 오브제의 사용에 대한 혜안이라고 해야 하나, 이를 가능하게 한 안무가의 지나온 삶의 궤적이 궁금하다. 지나온 활동들이 이번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것 같다.
[김 왈]: 사실 나는 학부 전공이 디자인인데 나와 잘 맞지 않아서 휴학을 하고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춤을 배웠다. 춤을 출수록 이 방향에 대한 확신이 들어 당시에는 전과나 자퇴를 하려 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셨다. 그래서 고민 끝에 부모님 말씀을 듣기로 하고 대신 졸업하면 더 이상 반대하지 않으신다는 조건으로 디자인 학부를 졸업했다. 그렇게 디자인과 춤을 병행하면서 당시에는 디자인 공부가 시간낭비라고도 생각했지만, 이제와 보니 둘을 동시에 배우면서 얻은 게 정말 많았다. 나는 디자인 경력을 바탕으로 회사나 여러 다양한 프로젝트의 아트 파트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내가 가진 예술적 시각이 상당히 넓어졌다. 사실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유일하게 관심이 갔던 부분이 색감이었는데, 때문에 나는 뭘 하든지 색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런 내 시각적 스타일을 필요로 하는 선생님들을 만나 콜라보 작업을 하면서 예술적 시각이 좀더 다져졌고... 예를 들면 컨템포레리 작업의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거나 현대무용 작품에 무용수로 참여해 사물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나도 확장되었다고나 할까-.
[천 왈]: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이번 작품으로 넘어가 보자. 안무를 위해 사용하는 자신만의 소스나 안무 접근하려는 방향이 있다면 알려 달라.
[김 왈]: 내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오브제와 색감이다. 처음에는 마네킹을 소품으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마네킹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서 사람을 마네킹으로 꾸미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즉 마네킹 역할을 하는 사람은 내가 다가가고 싶은 상대다. 나와 상대를 이어주려고 노력하는 부품 같은 인물도 등장한다. 마네킹은 나에게 반응하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처럼 움직임이지 않고, 다만 뻣뻣한 동작으로 부분적으로만 반응할 뿐이다. 높이가 다른 힐을 신겨 움직임을 더욱 부자연스럽게 표현하려 한다. 그래서 마네킹으로 대변되는 그 친구는 얼굴이 공개되지 않을 예정이다.
그 친구와 잘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으므로 그 꿈을 이 작품에서는 색감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꿈을 꾸는 것은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옷 역시 선명하지 않은 파스텔톤으로 입히고 몽환적인 색감으로 가려고 한다. 또 한 가지 오브제로 원래는 물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실험해보니 너무 어려워서 색깔이 있는 스타킹 두 개로 바꾸었다. 해피엔딩이 아님을 강력하게 표현하기 위해 마네킹에 스타킹을 씌운 후 다른 하나는 내가 쓰고, 그 스타킹을 당기면서 둘 사이의 긴장감을 표현하려고 한다.
[천 왈]: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서 음악, 무대미술/설치, 공간 활용, 작품 구성, 춤 동작 등등 작품의 요소 중, 안무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
[김 왈]: 마네킹으로 표현되는 인물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 소품으로 노트북 서너 대와 핸드폰 등을 이용할 계획인데 사진 이미지를 노트북에 띄우고 태블릿이나 화면 크기가 다른 여러 대의 스크린에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이게 할 예정이다. 이루어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인데, 어느 스크린에는 손이나 얼굴이 부분적으로만 등장하면서 좀더 극적인 효과를 보강할 생각이다.
[천 왈]: 듣기만 해도 뭔가 비주얼적으로 강한 느낌이 전달된다. 기존의 무용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른(웃음), 시각적 즐거움이 극대화된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안무가의 오픈 클라스가 8월 26일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다. 새싹 안무가 공개 워크샵의 마지막 순서이기도 하다. 작품을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클라스에 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김 왈]: 나는 일단 작품 주제를 정할 때 내 이야기를 하려 하기 때문에 써놓은 일기나 사진을 보고 그중 꽂히는 사진이나 기록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마인드맵’이라는, 즉 큰 종이에 어떤 주제를 정했으면 관련된 키워드를 지도처럼 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정했다면 흰색 고양이, 흰 털, 장모, 갈색 눈, 파란 눈 등등 이렇게 그 주제와 관련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키워드를 마인드맵으로 빠짐없이 써내려간다. 그렇게 모든 키워드를 바탕으로 연관성이 있는 키워드들을 하나로 묶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면 주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색감이나 어떤 소품을 써야할지 대략적인 커다란 밑그림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잡은 틀을 바탕으로 소품이나 색감을 확정시키고 관련 음악과 필요한 기타 아이템들을 정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움직임을 풀기 시작한다.
이번 워크샵에서는 내가 쓰는 안무방식인 이 마인드맵을 활용한 움직임을 해볼 생각이다. 사실 나는 잘 잊어버리는 편이라 이렇게 자세한 밑그림을 습관이 생겼는데, 큰 얼개를 바탕으로 생각의 가지를 치는 습관은 작품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들어 이번 워크샵에서 활용해볼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직접 쓴 키워드이고 선택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거부감이나 고정관념 없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천 왈]: 모든 ‘새싹’ 안무가에게 마지막으로 드리는 공통 질문이다. 새싹이란 그야말로 ‘새로운 싹’이다. 무용으로, 자신의 몸짓으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싶은 사람들을 우리는 찾고 있고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 첫 싹을 틔우려는 시작점에 선 풀뿌리 예술가로서 이 과정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혹은 틔우고 싶은 ‘예술적 발아지점‘은 무엇인가?
[김 왈]: 작품을 만들면서 노련미라고 해야 하나, 소품이나 장면들이 생뚱맞게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통해 내가 풀어내려고 하는 오브제와 장면들을 노련하게 엮어내는 기술을 터득하고 싶다. 내 작업팀을 만들어 꾸린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안무자로서의 생각을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 예를 들면 무용수에게 무용처럼 반듯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을 하지만 그 친구는 꼿꼿한 움직임을 교육받다보니 불편해한다. 아니면 극에서의 감정 표현은 내 역할인데 다른 역할을 맡은 무용수에게 이를 이해시켜 그만의 감성을 설득시키는 과정들이 쉽지만은 않다. 이런 과정들이 잘 어우러져 작품의 의도한 바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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