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발아지점 인터뷰]
김문주의 <뜻밖의 가능성>
인터뷰어 | 천 샘 (오후의 예술공방 대표)
2017. 7.29. 한낮 @5Extracts, 홍대
[천샘 왈(이하 천)]: 작품의 제목(혹은 가제)과 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김문주 왈(이하 김)]: 가제는 < 뜻밖의 가능성 >이다. 처음 잡았던 주제는 일상에서 타인과 만나는 과정, 다시 말해 공동체와 개인과의 관계성에 주목해 개인이 공동체 안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주체성을 유지하며 타인과 공생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작품으로 표현되기에는 범위가 크다보니 내가 왜 이 주제를 고민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요즘은 혼밥, 혼술이 유행이고 나 역시 혼자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성향일까, 궁금해졌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어딘가 편치만은 않은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만나고 싶은 친구만 만나면 되었지만 이제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만나기 싫은 사람을 피할 수도 없고... 해서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해 나 스스로 고민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자극들이 외부에서 들어오고 사람들은 전시를 보러간다거나 카페를 가는 등등 여러 활동을 보여주기 식으로 선택하지만, 정작 왜 선택하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한다면 다른 사람과 부딪혔을 때 저 사람은 나랑 달라 하고 관계를 끝내버리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시야로 보듬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워낙 다들 먹는 것에 관심이 많은데, 마치 음식을 ‘음미하듯이’ 사람을 대하고 현 상황을 마주한다면 좀 더 깊이 있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음미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타인은 누구도 예상하거나, 추측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래서 더 많은 가능성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가 ‘타인’인데, 그것을 음미하고, 깊어지고 싶다는 주제다.
[천 왈]: 안무가의 지나온 삶의 궤적을 좀더 들어봐야 할 듯하다. 안무자는 2015년 <세월호1주기 추모공연: ‘팽목의 자장가’>를 댄서스라운지의 개관기념 공연으로 올렸을 당시, 김지정 안무의 <수송>에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실 그때 나는 김문주 안무자를 무용수로서 잘 몰랐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용하고 내면적인 느낌이 전달되었다. 성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앞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지나온 삶의 시간이 이번 작품에 미친 영향이 클 것 같다.
[김 왈]: 나는 예술고등학교, 예술대학을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삶의 일정, 일상생활들을 자발적으로 이끌어온 시간이 길다. 무용을 시작한 어렸을 때는 ‘노력하면 다 된다’는 얘기를 믿었고, 따랐고... 예고 진학해서는 무용 아니면 집을 반복하는, 어떻게 보면 남들이 보기에는 지루하고 예술특기생들에게는 참으로 일반적이고도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았다. 나의 원래 성향은 개인적이고 많은 친구를 사귀는 편은 아니었지만, 대학에 들어오면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예민한 시기에 부대끼는 것도 있었고. 누가 모이라 하면 모여야 하고, 그 안에서 성취라는 것도 뚜렷하지 않다보니 자신에게 민감해지는 시기가 오더라.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도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작품에서 풀어내야할 숙제가 된 듯하다.
[천 왈]: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이번 작품으로 넘어가 보자. 자신만의 안무기법에 기술한 ‘식물의 사용’이 특이하다. 서류에 보면 식물을 통해 인간이 맺는 관계성의 지형을 파고 들어간다고 기술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식물이 좋아하는 주파수를 이용한 음악 사용의 가능성도 있었고), 참으로 흥미롭지만 내 지식이 미천해서인지 이 그림이 어떻게 펼쳐질지, 잘 상상되지가 않아 조금 난감하기도 하다. 안무가가 직접 알려 달라.
[김 왈]: 식물이 탄생하는 과정을 움직임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고(웃음), 세 장면 정도로 구성을 진행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장면은 커다란 통을 사용하는데 통은 화분의 의미를 갖는다. 화분은 정원을 갖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식물 저 식물을 같이 심을 수 있는, 그래서 공생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화분이 보여주는 모습은 만개하는 이미지보다는 성장하고 그다음 시드는 이미지다. 다시 말해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이는 이미지인데, 따라서 이를 움직임으로 풀었을 때 무용적이기 보다는 조금 이질적인 움직임이 될 수도 있겠다.
두 번째 장면은 조명이 꺼지면 화면이 전환되면서 무대가 카페 테이블로 바뀌고 한 여자가 커피를 음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요즘 사람들은 카페에 자주 가는데, 모르는 타인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개방된 장소에서 누군가와 교류하는 느낌을 느끼기 위해 가는 경우도 많다. 그 안에서 한 여자는 커피를 끊임없이 마시려하는데 한 사람은 끊임없이 방해하려 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첫 번째 장면에서 말한 화분을 상징하는 통과 더불어 무대 뒤편에 설치될 화분의 수분도를 나타내는 수분표시판이다. 수분도가 높아지다가, 건조한 상황에서는 수분도가 낮아져 내려간다. 결국 수분도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음미하는 삶을 살자’는 것인데, 삶의 만족도, 질, 생명력, 생기를 수분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이런 이미지적 전달이 인간의 관계성을 드러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주파수가 있는 음악에 관해서는, 편안한 클래식을 들었을 때의 심적 상태와 헤비메탈을 들었을 때의 정서적 반응이 다르듯이, 저주파 음악을 들으면 식물의 생장속도에 더 좋다고 하는 이론에서 사용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이 음악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는 않겠지만 조금 변형해 불편하거나 부드러운 사운드를 대조시킬지를 고민 중이다.
[천 왈]: 설명을 들으니 이제야 선명하게 그려진다. 사실 식물을 이용한 인간관계의 은유가 얼마나 표현될지, 혹여 느슨하지는 않을지, 기우가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체적인 그림이 매우 또렷하고 흥미롭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서 음악, 무대미술/설치, 공간 활용, 작품 구성, 춤 동작 등등 작품의 요소 중, 안무자가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
[김 왈]: 보는 분의 입장에서 무대미술, 시각적인 면에 힘을 주려고 한다.
[천 왈]: 안무가의 오픈 클라스가 이번주 토요일인 8월 12일 토요일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다. 작품을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클라스에 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김 왈]: 오픈클라스에서는 현재 작품에서 고민 중인 요소를 사람들과 펼쳐볼까 하는데, 3가지 정도의 규칙을 정해 움직이려고 한다. 내 작품은 식물을 사용하려고 하니까, 눈으로 보이는 식물의 특징은 식물은 발로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한정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체부위 한 부위를 접촉시킨 상태에서 무용수가 움직인다거나, 식물이 가진 불규칙적인 패턴에 따라 움직이는 실험을 해볼까 한다.
또한 한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나머지 사람은 아바타처럼 움직이는 방식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떤 움직임 지령을 보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천 왈]: 마지막으로 모든 ‘새싹’ 안무가에게 마지막으로 드리는 공통 질문이다. 새싹이란 그야말로 ‘새로운 싹’이다. 무용으로, 자신의 몸짓으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싶은 사람들을 우리는 찾고 있고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 첫 싹을 틔우려는 시작점에 선 풀뿌리 예술가로서 이 과정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혹은 틔우고 싶은 ‘예술적 발아지점‘은 무엇인가?
[김 왈]: 작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공생하고 공감하면서 사는 삶인데, 식물들을 보면 옆 식물이 다른 식물에게 제는 왜 저렇게 생겼어, 하고 딴죽을 놓지 않는다. 때로는 그런 모습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때로는 경외심마저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내 작품의 일차적인 목표는 그러한 ‘인정’ 혹은 ‘수긍’으로의 나아감이라면, 이차적 목표는 주변 사람들과 좀더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건전한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사는 삶이다. 앞서 말한 ‘음미하는 삶’- 그것을 나 스스로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을 통해 좀더 온전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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