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발아지점 인터뷰]
'휘뚜루마뚜루(이용훈, 차규화)'의 <여행탐구: 언어영역>
인터뷰어 | 천 샘 (오후의 예술공방 대표)
2017. 7.15. 한낮 @댄서스라운지
[천샘 왈(이하 천)]: 작품의 제목(혹은 가제)과 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차규화(이하 차)]: 작품 제목은 <여행탐구: 언어영역>이다. 우리는 최근 반년 정도를 외국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은 생전 처음 들어본 언어를 쓰고,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를 쓰고 있고, 그런데 서로 못 알아들으며 좌충우돌하는 상황이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주제로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 스타일이 한 장소에서 최소 한 달 정도를 보내는 것인데 이번에는 파리에서 한 달반, 베를린에서 한 달, 서울에서 한 달, 그러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3개월을 보냈다. 유럽의 이것저곳을 보고 느끼다가 한국에 돌아온 후 다시 미국으로 떠났는데, 장소를 옮기고 여러 체험들이 쌓이면서 한국에서 작업했으면 좋겠다, 우리 것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도 팀명이 있는데 이름은 <휘뚜루마뚜루>다.
[이용훈(이하 이)]: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아무 데에서도 잘 쓰인다’는 의미인데 어르신들이 자주 쓰시는 표현이다. 사실 규화씨 어머니께서 많이 쓰시는 말이기도 하고(웃음). 어감도 신선하고 우리가 무용뿐 아니라 이곳저곳 다양한 활동을 해서 그렇게 지었다.
[천 왈]: 팀 이름이 참으로 신선하다. 이용훈 안무가 말대로 어감도 좋고 재미있다. 대부분 무슨무슨 ‘댄스씨어터‘로 대동단결한 이 시대에 이런 획기적인 팀명을 정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지나온 두 분의 삶의 궤적과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차 왈]: 무용계에서 이른바 ‘무용단’하면 대부분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따와서 ‘용댄스’라거나(모두 빵 터짐), 차규화 댄스씨어터, 무슨무슨 댄스랩, 이런 식이다.
[이 왈]: 우리는 그런 팀명이 지루했고 다른 느낌의 이름을 갖고 싶었고. 하하하~!
[차 왈]: 사실 우리는 12월에 결혼 예정인 예비 신랑신부 커플이다. 예술성이 좋다고 생각되는 선후배 관계로 시작했고 그러다가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콩쿨에 많이 나갔고 춤 성향 역시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다면 이용훈 안무가는 나와는 반대로 콩쿨보다는 공연을 많이 했고, 무언가를 좀 더 자유롭게, 본질적으로 잡아내 표현하는데 강하다(참고로 이용훈 안무가는 2016년에 개봉한 <I Am a Hero>라는 좀비물의 일본영화에서 200:1의 경쟁률을 뚫고 ‘높이뛰기좀비’로 캐스팅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영화 <부산행>이 개봉했을 당시 좀비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현대무용 전공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이용훈 안무가 역시 현대무용의 독특한 움직임을 다른 예술분야에서 선보인 경우라고 하겠다..-인터뷰어 주).
[이 왈]: 우리는 결혼을 전제 하에 계속 활동을 할 계획이라 팀을 만들어 우리만의 레파토리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는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고, 그런데 둘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누군가의 팀에는 소속될 수 있지만 독립된 예술가로서 설 수 있는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춤이 아니라 우리 둘만의 춤을 추고 싶었다.
[천 왈]: 이번 기회가 그 시작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안무를 위해 사용하는 자신만의 소스나 안무 접근하려는 방향이 있다면 좀더 구체
적으로 얘기해보자.
[차 왈]: 6개월을 여행하면서 처음 느꼈던 점은 우리가 ‘외계인 같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외국에서의 매 순간이 언어시험을 보는 것 같았다. 외국어로 설명을 하는 모든 순간이 말하기 시험 같았다고나 할까? 파리, 베를린, 서울 그리고 미국에서 한 달씩 옮겨가면서 살았는데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갱단이 살법한 곳에 거처를 잡았다. 그런 상황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때문에 늘 긴장한 상태에서 언어 시험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웃음).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한곳에 4-5일 정도 머무는 방식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우리는 한 달을 있다 보니 나중에는 한국에서 온 여행객을 우리가 관광시켜 주고 있더라. 이 모든 상황들이 상당히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면이 많았다.
[이 왈]: 작품에는 우리의 사적인 일기에서 직접적으로 발췌한 내용이 아니라 누구나 여행하면서 느낄 법한 얘기들을 담았다. 상상하고 볼 수 있는, 그리고 공연을 본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질문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게 우리의 바람인데...
예를 들면 첫 장면은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행동이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보면 한국어 버전, 독일어 버전, 프랑스어 버전으로 기내 안전 수칙을설명하는 움직임이 언어만 다를 뿐 동작적으로는 다 똑같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이 움직임도 하나의 군무이자 춤이 될 수 있다. 여행할 때 언어의 장벽 때문에 불가피하게 듣기, 말하기, 쓰기 등을 시험 보게 되는 듯한 그런 순간들을 묘사하면서 ‘그래, 우리는 이렇게 여행을 했었지!’라고 말할 법한 상황을 그리려 했다.
전작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우리는 작품을 만들 때 정말 진지하게 작품에 임한다. 그런데 막상 작품을 봐주시는 관객들은 우리가 묘사한 상황을 너무도 즐거워 하시더라. 우리가 만든 첫 작품이 <코믹댄스페스티벌>에 초청되었는데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고. 웃기게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데 보시는 분들이 굉장히 유쾌하다고들 말씀해주신다. 때문에 이번 작품도 우리는 진지하게 나가겠지만, 그럼에도 관객들과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자아낼 상황들이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작품을 보고 재밌다고들 말씀하시는 이유가 그런 어떤 현실성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고.. 그래서 이번 작품은 우리의 두 번째 창작 작품이 된다.
[천 왈]: 지금 대화만 해도 두 분다 정말 진지한데 듣는 나로서는 듣기만 해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번 작품에서 음악, 무대미술/설치, 공간 활용, 작품 구성, 춤 동작 등등 작품의 요소 중, 안무자가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
[차 왈]: 아마도 음악사용은 최소화할 것 같다. 쓴다면 한두 곡 정도만 쓰게 될 것 같고. 한 장면에서는 말을 녹음해 이를 사운드로 깔아 움직임과 섞어 사용할 것 같고, 마지막에는 음악을 튼 다음 노래를 따라 부를 수도 있겠고... 듣기평가를 묘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는 독일어, 불어, 영어, 한국말 이렇게 네 언어가 나온다. 그 언어들의 다른 억양과 엑센트를 십분 활용해 작업할 것 같다.
[이 왈]: 우리는 만난 지 4년이 되어가는 커플이다. 오래된 연인들이 그렇듯이 말로 다 표현하지 않을 때도 많다. 이러한 우리 둘만의 이야기 또한 작품에 일부분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작품에 연기도 아닌 것이 어설프게 들어가면 완성도가 떨어지므로 그런 상황들이 잘 녹아들게 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무용적 움직임으로만 구성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우리 방식이 정통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팀명이 말해주듯이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좀더 다른 여러 다양성들을 작품 안에 녹여낸, 그래서 어찌 보면 다원예술 쪽에 가까울지도 모를, 열린 가능성을 갖고 있다.
[천 왈]: 안무가의 오픈 클라스가 이번 주 토요일인 7월 29일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다. 클라스에 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이 왈]: 참가자는 종이를 뽑게 될 텐데 종이를 받자마자 종이에 적힌 글을 ‘보면서’ 제스처를 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종이에 적힌 글을 ‘읽으면서’ 제스처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말의 포인트만 잡아서 또 제스처를 하고. 다시 말해 이런 수순으로 글을 보고 즉각적으로 나오는 제스처를 통해 움직임을 반복하고 변형하면서 소리와 움직임을 계속 디벨롭하게 될 예정이다.
[천 왈]: 모든 ‘새싹’ 안무가에게 마지막으로 드리는 공통 질문이다. 새싹이란 그야말로 ‘새로운 싹’이다. 무용으로, 자신의 몸짓으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싶은 사람들을 우리는 찾고 있고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 첫 싹을 틔우려는 시작점에 선 풀뿌리 예술가로서 이 과정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혹은 틔우고 싶은 ‘예술적 발아지점‘은 무엇인가?
[차 왈]: 나 같은 경우(음-), 고집을 피워보고 싶다. 우리는 엄마 품을 떠난 새끼 오리다. 더 이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묶여있지 않으므로 엄마 품을 떠난 오리인데 이제부터 성장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번 기회를 통하여 조금 더 발전하고 알려지면 이번 기회를 통해 그다음 공연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우리 둘이서 우리 것을 고집부리며 만들 수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왈]: 나는 이 기회를 통해 얻어가는 건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 그것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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