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발아지점 인터뷰]
안은주의 CONCRETE DISTOPIA
인터뷰어 | 천 샘 (오후의 예술공방 대표)
2017. 6.13. 한낮 @가비애, 홍대
[천샘 왈(이하 천)]: 작품의 제목(혹은 가제)과 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안은주 왈(이하 안)]: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Concrete Distopia를 고민 중이다.
예를 들어 ‘묻다’라는 단어의 경우, 무언가를 매장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질문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묻다’처럼 (생명-사물을) ‘매장하다’와 (사회-개인에) ‘질문하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 임팩트 있는 단어를 찾고 싶었다. 그런데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고민하다가 concrete라는 영어 단어는 ‘단단하다’라는 뜻과 콘크리트(시멘트)라는 뜻을 갖고 있고 distopia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인데 이 둘의 조합이 내가 생각하는 환경, 땅에 대한 의미를 가장 잘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이 죽으면 매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리고 그렇게 매장되어 생명이 분해되고 썩어 들어가면서 영양분을 얻어 땅은 자생력을 얻는다. 그런데 살처분을 하면 엄청난 숫자의 생명이 대량으로 매립되는데 이 과정이 양산하는 무자비함을 겪어낸 땅은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자랄 수 없다. 땅뿐만 아니라 물도 오염되고, 거기서 싹이 자란다고 해도 오염된 싹이 자라나기 때문에 땅의 생태계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살처분 문제를 최근에 접하기 전까지는 저런 형태로 땅이 죽어간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고 땅 자체를 너무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이 주제를 파고 들어갈수록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고, 땅의 오염으로 인해 생기게 되는 부작용들이 예삿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이 상황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천 왈]: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이 가는 주제다. 이 주제를 어떻게 선태하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 안은주 안무가의 '지나온 삶의 궤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이번 질문은 개인적 삶과 더불어 요즘 워낙 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출연한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오후의 예술공방’과의 연말 공연부터 시작해서 최근 리케이댄스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작품 안에 사회적 비판이 강하게 녹아든, 혹은 예술의 사회 참여적 역할/공공성이 강한 공연들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나온 활동 과정이 이번 작품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안 왈]: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부터 사회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뉴스를 보는 것도, 사회문제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포털에 올라온 사회적 이슈에 관한 스토리 펀딩도 자주 보는 편이다. 그러던 중에 최근 살처분에 대한 사진전을 접하게 되었고 여기서 큰 영향을 받았다. 또한 작년에 '예술공방'에서 사회적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스터디에서 동물권 이슈에 관련된 동영상을 보기도 했었고... 여튼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살처분과 오염에 대한 기사를 많이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럴수록 이 문제가 생각보다 굉장히 심각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경제성과 합리성을 이유로 아주 쉽게- ‘묻어야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물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생각을 배제한 채 단순히 묻어버리는 논리에 경악했고, 인간의 존엄성은 당연히 귀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왜 동물은 그러지 못하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개인적으로 탄생과 죽음은 가장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 상황은 ‘죽음’보다는 ‘폐기’에 가깝기에 존엄성이란 단어를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최근 AI의 재발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 더 생각하게 된 것도 있었고..
리케이 댄스에서의 활동은 (가장 최근에 마친 학교순방 프로젝트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청소년에게 맞춰 ‘오락이 되고 호락호락 쉬운 춤-’이라는 컨셉의 “오락호락춤“이라는 제목 아래, 중고등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주제를 갖고 학교탐방을 끝냈다. 학교를 찾아가서 어린 친구들을 상대로 공연하니까 별 것 아닌 것에도 우와~~ 하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온다. 또한 현대무용을 알리고 미래의 관객들을 발굴한다는 측면에서도 굉장히 좋고 공연하는 입장에서도 관객들이 (기존의 객석반응과는) 굉장히 다르기에 좋은 에너지를 받는 게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 공연이고 학교 강당에서 진행하는 것이라 준비할 부분들이 많아 힘든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웃음)
'오후의 예술공방'에서의 활동은 2015년부터 쭉 이어가고 있는데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지식을 섭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 책을 읽거나 하면 아무래도 좋아하는 장르나 주제만을 고르게 되기 쉬운데, 여러 사람과 같이 읽고 토론하게 되니 좀더 세상을 넓게 보는 힘을 키워주지 않나 생각된다. 또 사회적인 이슈들도 많이 다루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를 토대로 공연을 올려 좀 더 깊이 있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는 모임이기도 하다.
[천 왈]: 안무를 위해 사용하는 자신만의 소스나 접근하려는 방향이 있다면 알려 달라. 인터뷰 심사에서도 말했지만 좋은 주제이지만 무척 심각한 사회적 이슈인 만큼 이렇게 쉽지 않은 주제가 어떻게 솔로 작품으로 다뤄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더군다나 올 해의 작품들은 영상을 쓸 수 없다. 작품이 움직임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 조건에서 이른바 살처분을 연상케 하는 배경조차 뒤에서 틀 수 없는 데 이 모두를 어떻게 은유적으로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기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 왈]: 몇 가지 오브제를 사용할 생각이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점토, 흙, 액체괴물, 뼛조각 그리고 항아리인데 이것들이 다 사용되지는 않을 것 같고 그 중 내용을 잘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은 오브제를 고르고 있는 중이다. 점토와 흙은 대지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줄 수 있고 또 점토는 내가 만지는 대로 그 모습이 변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생명을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다. 액체괴물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사실 이 물체는 만졌을 때 물컹한 느낌과 마구 늘어나는 성질 때문에 약간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고 동식물의 죽음 이후 분해되는 과정에서 흘러나오게 되는 분비물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고르게 되었다. 오염을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하여...
뼛조각은 조금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수소의 머리뼈’는 고대 여신의 상징에서 자궁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직접적으로는 죽음을 나타내기도 하여 죽음과 생명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 오브제의 경우 실제로 사용할지 아니면 무대에 올려만 놓을지는 고민 중이다. 마지막으로 항아리는 여성의 자궁이나 배의 상징을 갖는데 이 오브제 역시 마찬가지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선택하게 되었다. 즉 항아리는 자궁에서 태어나는 생명체의 탄생, 그리고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이의 흔적을 이 안에 담아 보관하였듯이, 죽음과 연계되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천 왈]: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오브제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 안에서 음악, 무대미술/설치, 공간 활용, 작품 구성, 춤 동작 등등 작품의 요소 중, 안무자가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
[안 왈]: 특별히 하나만 꼽기는 어려울 것 같고, 혼자서 무대를 채워야 하기에 보았을 때 작품이, 무대가 비어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그래서 오브제를 사용해 움직이는 것과 또 이것들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사용할지가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천 왈]: 안무가의 오픈 클라스가 이번주 토요일인 6월 24일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다. 또한 그날 3시부터 '오후의 예술공방'의 월례 살롱스터디가 열리는데, 안무자가 예술공방의 멤버라 안무자가 선택한 책과 작품 발제도 같이 열릴 예정으로 알고 있다. 작품을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클라스와 그날 공방스터디에 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안 왈]: 우선 이 날 몇 가지 실험을 해보려고 하는데, 생각하는 오브제(점토,액체 괴물 등)를 이용해 약간의 제한점을 설정해 움직여 보려 한다. 먼저 움직이는 동선은 정해진 동선을 사용할 것인데, 자연의 순환 시스템에 일정한 루트가 있다는 점이 직·병렬 회로가 작동하는 원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로도가 나타내는 것처럼 그 길을 따라 움직여 보려 한다. 다만 회로도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계속 직진하지는 않고, 3인 1조가 되어 움직이는 한 사람을 두 사람이 막고 저항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처음 생각한 건 내 손에 작은 생명을 상징하는 소형 오브제를 올려 몸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에 물체를 옮겨가며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이 오브제를 다른 것들로 교체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날 다양한 오브제를 선택해보려 한다. 다만 움직임적 측면에 있어서는 계속 흘러가는 움직임 안에서 어떤 장애물을 만났을 때 나타나게 되는 몸의 반응들(이를테면 속도나 패턴...)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또한 사람들과 움직였을 때와 사람들이 빠진 상태에서 다시 혼자 움직였을 때 움직임적 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 부분도 관찰해보고자 한다.
워크샵 이후 3시부터 진행될 살롱스터디에서 다루게 될 책은 <생명에서 생명으로>라는 책이다. 이 책은 동·식물들의 죽음 이후 자연에서 벌어지는 경이로운 삶의 현장을 탐구한 생명 에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지구 생태계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또 죽음이 단순히 끝이 아님을알 수 있다. 이 책은 우리 인간이 자연 생태계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동·식물이 죽고 난 후 벌어지는 일들, 분해되는 과정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사실 책을 고르는 데 2주나 걸렸다. 살처분과 토양오염에 대한 전문적인 책도 있었지만 이미 관련 사실들이 알려진 상황에서 세세한 사실들을 되짚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의 매립에 대해 접근하는 책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생명을 지닌 우리가 자연스럽게 자연의 일부로 죽는 것에 대한 과정이 편안하게 설명되어 있다. 독수리의 죽음에 대한 것도 있고 새똥구리에 대한 것도, 인간에 대한 것도 있다. 그래서 ‘살처분’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긴장감을 경감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 왈]: 모든 ‘새싹’ 안무가에게 마지막으로 드리는 공통 질문이다. 새싹이란 그야말로 ‘새로운 싹’이다. 무용으로, 자신의 몸짓으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싶은 사람들을 우리는 찾고 있고,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 첫 싹을 틔우려는 시작점에 선 풀뿌리 예술가로서 이 과정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혹은 틔우고 싶은 ‘예술적 발아지점‘은 무엇인가?
[안 왈]: 작품을 통해서도 그렇고 춤을 출 때도 그렇고, 요즘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자아성찰이다. 나는 춤을 추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인지 많이 깨닫게 되었고, 나이가 점점 들면서 춤을 추며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은 깨닫게 되는 것도 같다. 그리고 기다리는 법을 조금은 깨닫게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춤은 나에게 내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시간이고, 작품을 만들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아갔으면 좋겠다. 혼자 하다 보니 전보다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 지고 그걸 토대로 지금보다 발전하는 모습이 있기를 바랄 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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