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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새싹이예염!] 첫 번째 발아지점 인터뷰: 이규용의 Vacancy (17.6.5)

댄서스라운지 2017. 6. 4. 23:38

[첫 번째 발아지점 인터뷰] 

이규용의 VACANCY

 

2017. 5. 26. 늦은 오후-  @댄서스라운지  


[천샘 왈(이하 천)]: 작품의 제목(혹은 가제)과 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이규용 왈(이하 이)]:작품제목은 vacancy이다. 처음 신청서를 보냈을 당시에는 작품을 만들면서 떠오르는 느낌들을 적으며 작시를 했었다. 시에 운율적 리듬감을 주기 위해 힙합에 라임을 타듯이 써내려갔는데, 읽어보니 그 안에 내 자리’, ‘너의 자리’, ‘빈자리등 자꾸 자리라는 라임을 넣더라. 그래서 작품 제목을 자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좀더 생각해보니 내가 사랑을 늘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결국 내 옆은 빈자리라는 것을 떠올려보니 자리보다는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만 seat이나 spot같은 영어 단어들은 맞지 않고, 그중 vacancy라는 뜻이 가장 잘 맞아 결국 빈자리라는 뜻을 지닌 vacancy를 작품 제목으로 정했다.


[천 왈]: 제목이 붙여진 과정을 보니 2차 개별 인터뷰를 하고 오늘까지 작품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더 궁금해진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 안무가가 해온 지난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여기서 지난 활동이 궁금하다는 것은 출신학교나 활동경력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서류심사에서 다 봤다(참고로 이규용 안무가는 중앙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였다- 인터뷰어 주). 다만 안무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에 대해 알고 싶다. 그걸 듣다보면 어떻게 이번 작품을 정하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독자들도 이해가 될 것 같고. 그 맥락에서 현재 소속되어 있는 안다미로 아트컴퍼니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린다.

 

[이 왈]: 지금까지 살아온 배경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잘은 모르겠지만(웃음), 난 어렸을 적부터 굉장히 내성적이었다. 트리플 에이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러다가 비교적 늦은 고등학교 때 현대무용을 접했는데 무용을 하면서 내가 변하더라. 무대에 서야하고 남들에게 비춰져야 하고 내 모습이 드러나야 하니까. 이후 군생활의 시기를 거치면서 좀더 변하게 되었고 사람은 어디를 가서든 겸손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고(웃음). 내가 맏이라서 그런가...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각별하게 사랑받아서 그런지, 그것이 작품의 직접적 이유는 아니더라도 희생이라는 주제에 매료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생겼고, 너무 사랑을 많이 받다보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가올 빈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물론 서류심사 때 썼던 바와 같이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에서 받은 영감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쌓인 영감들을 우리 나름대로 탄탄한 스토리를 구성해, ‘당연시 여겨지는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잔잔한 감동으로 전달해보고 싶었다.

 

안다미로 아트컴퍼니에서 활동한 지는 1년 정도 되었다. 대표는 대학 2년 후배인데 댄서보다는 안무가로서 일을 추진하는 힘이 대단한 친구다. 때문에 후배더라도 느끼고 깨닫게 된 것이 참으로 많아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단체에 소속된 이유이기도 하고. 안다미로는 작품을 구성할 때 스토리텔링식 접근이 많은데, 단지 소속단체의 색깔 때문만은 아니고 나 역시 스토리텔링에 대한 욕구가 개인적으로 컸다. 공연이 끝난 후 객석에 밀려드는, 그러니까  현대무용의 모호함으로 인해 복잡해진 관객 반응을 늘 접하면서 이를 극복해 보고자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참고로 안다미로 아트컴퍼니에는 댄서들을 포함, 배우들도 속해있는데 그래서 댄스가 아닌 좀더 복합적인 아트컴퍼니를 추구한다. ‘무용만 추구하는 구조보다는 좀더 다양한 예술적 가능성을 가진 포맷이라 좋아한다.   


 

 

[천 왈]: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이번 작품으로 넘어가 보자. 지원 서류를 보면 기존의 현대무용의 고질적 지루함과 난해한 철학들을 주제로 하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공연을 만들고 싶다라는 이유를 썼다. 그리고 이는 사실 서류심사를 하다보면 상당히 많이들 제기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획자로써 갖는 기우는, 실제로 (예술적 평가가치를 지닌) ‘대중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승전결과 이해하기가 쉬운 작품 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대중성이라기보다는 작품 구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작가정신이 결여된 진부함, 또는 기존 어법의 답습에 가깝다고 누군가는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사실 우리가 이규용 안무가를 뽑은 이유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진부하고 노골적으로 보이는 이 희생이라는 것을 주제로 한 사랑이야기 때문이었는데... 드라마에서 너무도 자주 나오는 이 주제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참으로 성실하게 서류심사에서도, 인터뷰에서도 끝까지 고집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진 점이 있었다. 분명 안무가의 주변에서나 나와 인터뷰를 할 때에도 이 주제와 접근방식에 대한 만만찮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때문에 기우는 이 스토리텔링이 그대로 무대에 옮겨진다면 너무 뻔하지 않겠는가, 라는 점이다. 이 주제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끌어낼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왈]: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을 만들 때 가장 고민한 요소도 그 부분이다. 드라마나 너무 많은 작품들이 사랑, 희생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당연히- 누군가는 진부하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 때문에 지금 그 비판을 들어도 사실 반박할 말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의도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객석은 단지 무용관계자 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올 수 있고, 전혀 연관이 없는 분들도, 그래서 우리 영화나 보러 갈래?’라고 하는 사람들도 올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영화 대신 무용극을 보러올 수 있진 않을까?라는, 이러한 조금은 다른 무용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봐주시면 좋겠다.

음식을 만들다보면 집밥도 있고, 인스턴트도 있고, 때문에 우리는 현대무용의 트렌디한 흐름에서 보면 어쩌면 인스턴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작품은 (적어도 이번에는) ‘무용극’, 그야말로 고민 없이 빠져들 수 있는 무용극을 작품구성을 위한 전체적 틀로서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진부함을 탈피하기 위한 독창성과 예술적 보완이 필요한 여러 면면에 있어서는 프로젝트 새싹이예염!’의 전체과정을 거치면서 주고받을 피드백과 토론을 통해 좀더 탄탄하게 보완할 예정이다.  

 


[천 왈]: 작품을 위해 사용하게 될 자신만의 특별한 안무 소스가 있는지

 

[이 왈]: 내 이름으로 처음 도전해 보는 작품이라...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읽고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마음먹었을 때 머릿속으로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첫 소절과 두 번째 소절을 읽으면서 스치는 그림이었다. 그리하여 그 머릿속의 그림을 시작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같이 작업하는 댄서에게도 감정적인 표현을 많이 요구하는 중이다. 몸의 움츠러듬이나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특유의 표정이 있을텐데... 사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나타나는 감정이 굉장히 중요한 무용극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표정이나 감정 없이 처리했을 때는 건조하고 큰 감흥 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감정을 이입하면 전혀 다르다. 감정의 삽입이 진부하게 보일지언정, 어떻게 보면 진부하게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니까 더 진부하게 표현해야하지 않을까라는 확신으로 너무 주저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다. 때문에 새로운 씬이 나오면 또 그 씬에 적합한 감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참고로 인터뷰 당시에도 희생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품도 없고, 장치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 둘만 가지고 날 것처럼 작업하고 있고.... 그나마 그중에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의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의상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데, 예를 들면 흰색 셔츠를 입는다던가, 해서. 의상도 그리 색다른 오브제는 아니지만 여튼 우리의 목표는 공연이 끝난 후 객석에서 이런 평가를 듣게 된다면 만족스러울 듯하다. “그 작품은 뻔했는데 그래도 나름 볼만 했어.”


[천 왈]: ‘진부하게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니까 더 진부하게 표현해야하지 않을까라는 당찬 확신이 마음에 든다. 사실 인터뷰를 하거나 젊은 현대무용가들을 만나다보면 트렌드에 탐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새로운 트렌드, 화끈한 오브제, 유럽 현대무용의 흐름을 무분별적으로 추구하거나 작품에 무차별적으로 도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작품의 주제와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과연 저 장치가, 라이브가, 마이크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이 공연장에서 들었던 적도 많고... 각설하고, 때문에 우리가 이규용 안무가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시도에 대한 과감한 배제다. 하지만 이것은 작품성의 담보에 대한 질문을 남겨둔다. 우리가 앞으로 주시하고 안무자의 작품에 피드백을 건낼 때 주력하게 될 지점이기도 하다.

이규용 안무가의 공개워크샵이 이번 주 토요일인 610일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선발 안무자 공개워크샵의 첫 타자로 선발되었는데, 작품에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클라스를 간단히 소개해 달라.

 

[이 왈]: 감정과 사물을 연관하는 워크샵을 하려고 한다.

한쪽에는 감정적인 면 다른 쪽에는 사물을 결합해, 예를 들어 여기에 의자가 있고 기쁨이라는 감정이 있다면 기뻐하는 의자를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작품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저울질하면서 딜레마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주인공의 이러한 상태를 이런 얼굴 표정으로는 흔하게 그려볼 수 있으니, 이를 고민하는 저울로 풀어낸다면 몸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다. 현대무용은 그러한 상상력과 추상적 몸짓에 특화된 면이 있고, 이 부분을 십분 살려서 워크샵을 진행해 보려고 한다.


[천 왈]: 클라스에 참여하는 분들이 준비할 것이 있나.  

 

[이 왈]: 연습복만 있으면 된다.

 

[천 왈]: 모든 새싹안무가에게 마지막으로 드리는 공통 질문이다. 새싹이란 그야말로 새로운 싹이다. 무용으로, 자신의 몸짓으로 새로운 싹을 틔우고 싶은 사람들을 우리는 찾고 있다. 그 싹을 틔우려는 시작점에 선 풀뿌리 예술가로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얻고 싶은, 혹은 틔우고 싶은 예술적 발아지점은 무엇인가

 

[이 왈]: [신인안무가전 코스푸~레 프로젝트; “새싹이예염!”] 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처음에는 이거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 발아날짜를 쓰라고 하고, 싹을 틔운다고 하고... 그야말로 선정된 모든 안무가들의 예술적 싹을 틔워주니까 새싹이라고 부른다는 건데, 그렇게 생각해보니 여기서 작품을 만들면 내가 보호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어찌 보면 내 작품은 아직 보잘 것 없는, 그리고 진부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작은 씨앗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아직은 호된 비판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고, 동시에 다른 안무자들의 작품창작과정도 지켜보면 내가 많이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뽑히고 싶었다.

 

때문에 지금 내가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은 이정도까지라고 한다면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저기까지 트이지 않을까, 생각한. 따라서 누군가는 진부한작품이라고 한다 해도 나는 정말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주제를 선택했고, 때문에 그 요소를 살리고 거기에 새로운 요소들을 첨부하다보면 좀더 수준 높은 스토리텔링을 완성할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든다. 그렇게 이 작품을 마칠 수 있다면 다음에는 이른바 좀더 현대적인’, 즉 새로운 기법이나 추상성들을 가미해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작품을 완성한 다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도 다른 안무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그런 나의 가능성을 발견했으면 좋겠고, 그만큼 설레기도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