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한 사람의 찬란한 에너지와 열정을 품은 좋은 느낌들이 저를 뒤덮을 때가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건강한 자기확신의 발산과 치열한 진지함. 타인에게 그처럼 매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권선화 안무가와 진행한 세 시간에 육박한 인터뷰는 제가 이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받은, 그리하여 무대 위의 작품이 말할 수 없이 궁금해진 시간이었지요. 아래의 인터뷰를 보시고 여러분도 그렇다면, 권선화 안무가의 작품 <Miss Dawsent>의 오픈 클라스, 다음 주 토요일 1시를 조금은 무게감 있게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살롱지기
[발아지점 인터뷰 2탄]:
'새싹' 권선화의 'Miss Docent'
인터뷰어: 천 샘 | 댄서스라운지 대표
15. 8.18. 오후- 댄서스라운지
[천샘 (이하 천)]: 작품의 제목(혹은 가제)과 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권선화(이하 권)]: 작품 제목은 Miss Docent이고, ‘회화를 설명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무용수 세 명이 총 70개의 그림을 움직임으로 설명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감흥을 얻은 14명의 아티스트의 작품 70개를 선택해 그중 21개의 작품을 움직임으로 풀어내게 된다. 그러니까 총 70개의 그림이 무대 뒷면에 영상처럼 들어가게 되고, 그 중 21개 그림은 라반동작분석법 중 ‘BODY, SHAPE, SPACE HARMONY’를 바탕으로, 나머지 49개 그림은 ‘EFFORT'를 중점으로 재해석하여 무대에서 움직임이 진행된다.
[천 왈]: 설명을 들으니 상당히 흥미롭다. 이미 경력이 화려하다. 한 예로, 올 5월에 MODAFE의 Spark Place에 <여자의 식탁>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했다, ‘초미니 새싹’을 검수하려 했던 라운지의 입장에서는 권 안무가의 약력에 잠시 주저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지금이 작품 활동에 대한 식욕이 왕성한 때로 보이는데, 지난 작품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권 왈]: 올 해 모다페에 올라간 작품 <여자의 식탁>은 일본 작가 에구니 카오리의 <차가운 밤에>라는 소설 중, ‘파를 썰다’라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다. 후작 <오감도>는 이상의 <오감도>에 깊은 영감을 받아서 이를 작품으로 옮겨본 것이고. 전작들은 문학 작품의 해석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텍스트를 기반으로 움직임 구상작업이 들어가 다소 무용수의 비중이 컸다면, 이번 작품은 회화와 연계해서 무용수의 움직임이 들어가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무용수에 비중이 크지 않고, 다만 무용수와 회화작품의 비중이 무대에서 비슷하다.
[천 왈]: 라반동작분석법과 회화라는 분야를 작품에 들여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권 왈]: 그렇다.
[천 왈]: 그렇다면 두 전작은 문학 작품에 기반한 반면, 이번 작품을 보면 회화의 도입과 라반동작구성법이라는 두 가지의 조합 측면에서 작품 구성이 매우 치밀하고 독특한 게 사실이다(그 점이 [새싹이예염!] 프로젝트에 권선화 안무가가 선정된 이유이기도 하고). 이것이 의도된 것인지, 자신만의 작품 성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과도기적 성향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변화의 시점에서 이번 작품에 대해 좀더 얘기를 해보자. Miss Docent의 특이점에 대해 소개해 달라.
[권 왈]:누군가가 안무를 할 때 감정에 심취한다거나 예뻐 보이는 방식으로 할 수도 있고, 테크닉에 집중하거나 연기력을 무대에서 표현할 수도 있다. 그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이다. 이번에 내 접근법은 회화라는 조금 다른 분야를 무대로 가져온 것인데, 관객들은 작품을 시각적으로 보고, 동시에 움직임과 함께 관찰하면서 이를 어떻게 느낄지가 사뭇 궁금하다. (그래서 나중에 관객들에게 물어보고 싶기는 한데...) 현재는 동작을 라반동작분석법을 적용, 그림들을 해체 및 객관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무용수에게 지시사항을 줄 때 이 그림을 분석법에 기인해 객관화시켜 바라보게 하지 않으면, 그저 자신이 느끼는 감정으로 추는 지극히 감정적인 움직임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작업은 그보다는 라반동작분석법을 가지고 그림에 나오는 동작들을 객관적으로 세미하게 재해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움직이려는 시도이다.
[천 왈]: 흥미롭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라반동작분석법을 도입할 경우, 움직임이 너무 도식화, 공식화되지는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라반이라는 공식의 틀에 박혀 너무 단순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림을 사적인 감정선에서 바라보지 않기 위해 객관화시키는 작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굳이 객관화를 시키려는 안무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보려할 때에는 그저 감정적 정서나 감흥을 느끼려는 부분도 큰 데, 이런 ‘동작분석을 통한 객관화의 과정’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라는 질문도 한편으로 든다.
[권 왈]: 움직임이 객관화되어 감정적 기피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두세 가지 정도의 보완책을 생각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음악이다. 르네 오브리의 음악을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영상을 찍어 봐도 움직임 자체는 감정이 없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해 우선 음악적으로 보완을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로 ‘라반분석을 통한 동작의 객관화 과정‘이 적용되는 부분은 내 솔로다. 두 무용수는 듀엣으로 가는데, 이 두 분은 여섯 개의 그림을 표현하면서 상황을 만들어서 갈 것 같다. 예를 들면 현재 무용수 듀엣이 작업에 들어간 사진의 경우, ’세실이야기‘(최근, 어느 미국 의사가 고액의 돈을 내고 아프리카 사자를 밀렵한 뉴스는 전세계적 공분을 자아내었는데 그 사자의 이름이 ’’세실‘이다.-인터뷰어 주)라는 제목으로 가게 되는데, 밀렵을 하고 동물들을 무참히 다루는 것이 인간이지만 내가 선정한 그림에서 보면 사실 인간은 먹이사슬에서 최하위의 피라미드개념이다. 이를 이미지와 움직임, 현실에 대한 연계로 역설적으로 표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무용수의 감정 표현이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 왈]: 다시 정리하자면 선정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그 이미지가 주는 현실적 상황을 움직임으로 연계하는 방식인가.
[권 왈]: 아마 듀엣 부분이 그렇게 진행될 것 같다. 그래서 듀엣은 스토리성이 가미된 총 여섯 가지의 회화로 작업을 한다.
[천 왈]: 그렇다면 그림을 그린 14명의 아티스트를 선정했다고 했는데 선정한 기준이 있는가? 주제 따른 선택이라던가.
[권 왈]: 오로지 내가 그림을 보고 받은 감흥, 단순히 끌림에 의해 선택했다.
[천 왈]: 자신의 감흥에 따라 한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도 감흥을 줄 수 있을까.
[권 왈]: 그건 사실 잘 모르겠다. 이 70개를 선정할 때에도 라반분석을 거치면서 정리하긴 했지만, 다른 분에게도 감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아직... 움직임이나 음악적인 부분에서 함께 전체적 해법을 찾아나가려고 한다. 치밀하게 분석하고 안무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감흥이 생길 거라고 본다.
참고로 내가 봤을 때는 이 그림들이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내가 봤을 때는 그렇다.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그림을 선정한 안무가가 어떤 느낌인지 관객들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웃음).
[천 왈]: (웃음) 들어보니 권선화 안무가는 ‘따뜻한 자신을 21장의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픈 안무가’가 아닌가 싶다. 어차피 예술은 개인적인 감흥을 자기만의 색깔로 보편화시키는 작업이고, 현대무용의 장점은 발레나 타 장르와 비교해 도구나, 움직임, 구성적 제약이 적다는 점이다. 즉 현대무용은 창작의 공간이 타 장르보다 넓은데, 때문에 그 장점들을 어떻게 ‘자기화’해서, 타인에게 공감대를 불러낼 수 있느냐가 쉽잖은 숙제가 된다. 다만 그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잠시 비판을 하자면, 현재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호폐쉬 섹터’ 같은 유럽 주류 스타일의 아류가 되어가고 있는 듯한 트렌드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내 기법을 찾느냐’는 대한민국의 현대 무용가들에게 참으로 시급한 숙제가 된다. 라운지의 임무는 그 숙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것이 밝히지 않은 이번 [새싹이예염!] 프로젝트의 취지이기도 하고, 서류 심사를 할 때, 안무방식-기법에 대한 기술만 심사 기준으로 올린이유다) 여튼 그 숙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것 같아 기쁘다.
[권 왈]: 사실 말씀하신 부분은 내가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오히려 무용계의 윗분들은 터치를 안 한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해봐-라고 한다. 그런데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그런 트렌드에 더 신경을 쓴다. ‘이건 요즘 트렌드가 아니잖아-’. 하지만 내가 집중하는 것은 라반을 가져오고 댄스테라피를 차용해 이를 내 나름대로 작품에 적용해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작품이 감정적 감흥이 조금 적은 모노톤으로 흘러간다 한들, 그 또한 분명 해석할 여지를 관객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관객들은 나의 작업방식을 궁금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15분동안 계속 내 자리에서 움직임일 것이다. 그리하여 관객들이 봤을 때, ‘와 멋있어-’. ‘와 슬퍼-’를 느끼는 게 아니라 ‘저게 뭐였지?’ 하고 계속 생각하게, 스스로 머리를 굴리게 하고픈 게 내 목표다.
[천 왈]: 오픈클라스에 대해 얘기해보자. 8월 29일 토요일 1시에 열리는 오픈 클라스에 소개해 달라.
[권 왈]: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안에 라반동작분석법을 들어가기에는 너무 짧고, 내가 해석한 그림을 보여주면서 15분 정도 설명한 뒤에, 이를 기반으로 같이 움직여보려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준비해야 할 것은 그냥 편한 복장과 생수 한 통 정도?
[천 왈]: 몸에 대해 모르는 분도 가능한가
[권 왈]:그분들에게 맞춰서 가려고 한다. 테크닉적인 동작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무릎 아대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천 왈]: 모두에게 드리는 공통된 마지막 질문이다. 안무가로서, 예술가로서 이 작업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혹은 스스로 틔우고 싶은 ‘예술적 발아지점‘은 무엇인가?
[권 왈]: 어느 작품을 하던 간에 분명 예술가는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성장을 한다. 나도 아직 이 작품을 공연에 올리지 않았지만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분명 많은 성장을 했다. 사실 리서치를 하고, 논문을 읽고, 라반동작분석법을 배우고 고민하면서 내 스스로가 움직임에 대해 생각했던 부분이나 아집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이 작업을 통해 다른 안무가님들의 작업방식에 대해서도 더 오픈 마인드가 되었고. 공연이 끝났을 때에는 스스로도 내 안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웃음)
--------------------------------------------------
[*발아지점 인터뷰: 권선화 안무가 오픈 클라스 홍보 동영상]
'언론 보도 + 기획 공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아지점 인터뷰 4탄]: 안은주의 <튀기: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15.10.2) (0) | 2015.10.05 |
---|---|
[발아지점 인터뷰 3탄]: 공혜원의 <배려의 아이콘> (15.8.25) (0) | 2015.09.03 |
[발아지점 인터뷰 1탄]: 김하람의 <간보기> (15.7.30) (0) | 2015.08.03 |
그날, 치유는 있었을까. (계간 문학선, 2015년 여름호) (0) | 2015.06.17 |
월간 [몸], '예술은 비극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15.5월호) (0) | 201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