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부족함없이 보듬어 안는 마음으로' 춤을 대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무용수로서 무대에 서기 위해 멋스럽게 소화해야 하는 동작들과, 이를 위해 수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는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아프게 질주합니다. 그렇게 외면은 멋져질지 모르지만 마음은 황폐해지며, 내외면이 거칠게 충돌하는 어떤 계절을 겪기도 하지요. 조금씩 메말라가는 '나'의 땅에 그러한 '나'를 끌어안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심어넣는 과정은 힘듭니다. '찬란한 벌판'을 달리는 여인들을 소개하는 마지막 인터뷰는 무용수와 무용동작심리치료사로서의 삶을 병행하고 있는 김하람 양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되찾은 마음의 주권과, 그 주권과 돌아온 몸의 주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제 35회 세계여성의 날 헌정공연: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세 번째 인터뷰:
무용수로 치료사로 사는 법 - 김하람
2019. 1월 댄서스라운지
[천샘 왈(이하 천)]: ‘찬란한 벌판’의 벌판을 달리는 여인들을 소개하는 마지막 인터뷰이군요. 이번에는 경어체를 쓰려고요. 1, 2회 인터뷰가 조회가 무척 많아서 제가 사실 놀랐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남은 인터뷰 시점에서 급히 공손해지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우선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하람 왈(이하 김)]: 저는 오후의 예술공방의 멤버이자 현대무용 및 무용동작치료를 전공한 김하람입니다.
[천 왈]: 어떻게 무용치료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직업 무용수란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무용과를 졸업한 대다수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잖아요. 제가 여기서 말하는 '직업 무용수'라는 뜻은 그야말로 100 프로 공연으로만 안정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무용수를 뜻하는데요. 발레단이 아닌 이상, 멤버가 다른 일시적인 프로젝트 그룹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현대무용에서는 쉽지가 않아요. 국립현대무용단의 경우도 단원들이 시즌제인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러다보니 대다수는 학원 강사, 입시 레슨, 바리스타 등의 사이드 직업이 있는데요. 김하람 양의 경우에는 뭔가 무용과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는 듯한 무용치료와 병행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넘겨짚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무용학원에서 티칭하는 주변 동료들보다 심리적, 재정적으로 안정적으로 보이는 지점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둘을 병행하는 삶의 방식이 무척 궁금하답니다.
[김 왈]: 저는 무용을 늦게 시작했고, 열심히 배우고 따라가기에 정신이 없던 나날들이 있었습니다. 입학을 위해, 졸업을 위해, 공연을 위해, 수입을 위해 정신없이 내달렸던 시간들 속에 깊은 소진이 따라왔고 번아웃이 되었는데요. 그러다보니 마음 속 깊은 고민에 머무는 시간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무용을 시작했던 이유와 목적이 사람들의 회복에 대한 것임을 깨닫고 지체 없이 대학원에 원서를 냈어요. 지금은 수료를 했고 직업적으로 안정화시키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번 학기에는 논문도 써야 하고 조금씩 영역을 탐색하며 발을 내딛고 있죠.
저에게 무용 치료사로서의 진로변경은 참 좋은 대안이기는 했어요. 워낙에 관심이 많았고, 또 초기에는 이 분야가 뭔지 정확하게 몰랐거든요. 무용치료에 대해 많이들 갖고 있는 이미지는 실상과 매우 다르면서도 매우 비슷합니다. 무용이라는 거대한 기둥을 만난 후, 심리치료라는 거대한 기둥을 다시 만난 셈인데요. 배울수록 어렵고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정체성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줘요. 그런 면에서 직업적인 안정감도 주고요. 물론 둘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호호~. 그래도 주어지는 기회들에 감사하며 삶을 꾸리고 있어요.
[천 왈]: 무용치료가 무용작업을 하는 데 끼친 영향이 있나요? 아니면 반대로 무용작업이 무용치료에 끼친 영향이라던가? 우리는 이 인터뷰를 끝내는대로 작품 연습에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도 병원에서 동작심리치료 세션을 환자들과 마치고 돌아왔잖아요.
[김 왈]: 무용치료적 관점이 무용 작업 과정의 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어요. 언젠가 제 작업을 해볼 마음이 생길 때가 올 지도 모르겠지만, 무용수의 입장에서 공연 및 표현을 하는 것은 '안무자의 생각을 담아내는 몸'이 되는 과정이잖아요. 즉, 퍼포머로서 내 몸을 설득하고 훈련하는 과정이죠. 그런데 무용 치료적 관점은 이와는 달리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숨어있는 역사, 그럴 만한 이유, 감정 등을 바라봐요. 때문에 내 몸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지금 내 몸의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받아들이고,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나 자신을 덜 미워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마음이 예전보다 덜 힘듭니다. 다만 무대는 여전히 어렵고요... 근육적인 부분, 작은 각도 하나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를 자각하며 작품을 받아들이는 만큼 좀더 겸허해지는 거 같아요. 물론 제가 성인군자는 아니어요. 저는 제 몸이 답답할 때가 너무 많아서... (그래도 예전보다 덜 닥달하게 됩니다^^)
[천 왈]: 저와 같이 작업을 많이 했어요. [세월호1주기 추모공연]도 같이 했고, 2018년의 <신나는 예술여행>도 함께 진행했죠. 그러다가 작년 무용계 반성폭력연대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요. 무용치료적 관점에서 무용계의 미투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무용인들과는 사뭇 달랐을 것 같아요. 직업적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심리학적 시선-해석이 동반되었을 것 같은데요?
[김 왈]: 사실 저는 그렇게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함께 있는 분들을 통해 마음 하나 보태어 보고, 그랬을 뿐이죠. ‘오후의 예술공방’이라는 모임의 특성상, 공방 언니들과 교류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개안되는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같아요. 미투 사건에 대해서는 그냥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지는 않았어요. 다만 신체 심리적 관점에서, 물리적 반경에 따라 인간의 몸이 느끼는 정서적 경계가 분명 존재하는데요.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생존의 문제고, 살아남기 위해 반응하는 몸이 됩니다. 너무 침입이 극심할 때는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고요. 인간의 뇌가 그렇습니다. 그것을 침투하려는 시도는 특히 직접적인 성적 침해는 너무도 위험합니다. 몸의 주권을 빼앗는 것이고 마치 국권침탈을 하려는 것과 같아요.
[천 왈]: 그래서인지 작년에는 무용계 미투 사건을 계기로 신체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모임과 활동들이 무용계의 여러 단위들에서 일어났잖아요. 특히나 젊은 여성 무용인들이 미투 사건이 보여주는 '몸의 주권 침탈'에 반대하며 거국적으로 봉기하며 열렬하게 활동했습니다. 무용치료적 관점에서, 그리고 젊은 여성 무용인의 관점에서 이 ‘신체주권 회복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이 현상이 다수의 무용인들에게 끼칠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 왈]: 신체주권 회복이라니, 정말 멋진 말이죠. 사실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무용치료를 배우고 나서 그러한 경계를 알았기 때문인데요.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에 대한 것은 설령 그것이 잘 소통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언젠가는 다루게 되더라고요. 내 현상을 잘 파악하는 것은 회복의 실마리가 됩니다.
사실 무용 현장에서 그러한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또 다를 것 같은데요. 몸을 다루는 분야에서는 몸이 '도구'로서 사용됩니다. 그런데 훈련과정, 목표치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그 도구로서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즉 이 구분의 과정이 녹록치 않은 만큼 올바른 인식과 실천적인 방안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각심을 갖고, 개안된 인식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무용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천 왈]: 맞아요. 그 개안된 인식과 실천 방안들이 '무용계 행동강령 만들기'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고, 우리도 이번 작업을 시작하면서 부족하나마 초안을 만들어 읽기도 했고요. 이번 <찬란한 벌판>에 참여해 여성들을 위한 헌정 무대를 열고자하는 출연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하나는 자신만의 야성으로 본인이 가고자 하는 삶의 행보를 직접 놓은 무용인들이라는 점. 두 번째는 소위 (지원금을 바탕으로 인아웃을 가르는) 무용계의 좁은 정의에 속한 분들이 아니라, 작년 무용계의 반성폭력연대를 중심으로 확장된 무용계의 지평 속에서 보다 명징하게 수면 위로 드러난 선후배 동료들이라는 공통점이어요. 즉 자신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새로운 길을 놓으며 활동해왔지만, 알려지는 데에는그닥 관심이 없었던 분들이랄까요? 하하하! 그런 의미에서 하람양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용계의 지평을 확대하며 나아간 30대 초중반의 여성 무용인들 대변하고 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람양이 어떻게 자기 내면의 야성을 회복해왔는지 궁금해요.
[김 왈]: 흠...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저는 제가 다소 여성스럽(?)다고 느끼고 있는데요. 다시 말하면 극복되지 않은 여성성이랄까. 제 몸의 포스쳐나 움직이는 방식에서 아직 야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동네 뒷산을 탐험하고 호기심을 느꼈던 그 시절을 내 몸은 기억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도 들고요... 이번 기회를 통해 '나의 즐거운 야성'을 찾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천 왈]: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람양이 꿈꾸는 찬란한 벌판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 왈]: 지난 여름 몽골을 다녀왔습니다. 그 때 몽골의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는 말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그들이 되고 싶었답니다(엉뚱하지만 진심이어요).
제가 꿈꾸는 찬란한 벌판은...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몽골 초원같은 곳입니다.
Editor's Note |
안다던 사람도 인터뷰를 통해 만나면 새롭습니다. 함께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지난 시간동안 깊고 견고해진 생각을 만나서인데요. 주변의 동료들이 실은 뜨거운 예술가였음을, '실천하는 그녀들'이었음을 깨달으며, 강품이 불었던 겨울을 뒤로 아주 맛있는 시레기 국밥으로 몸을 덮힌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당신과 나의 찬란한 벌판>의 참여 아티스트 인터뷰는 이것으로 마무리합니다.
다음 주에는 티저 영상이, 그리고 조만간 이번 작업에서 서툴게나마 출연진들이 함께 만들어본 <창작할 때 우리의 약속들>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실천은 어디까지이고, 우리는 어느 지점까지 다달아야 더이상 후회가 없을까요? 아직 그 답은 찾지 못했지만, 이렇게 공연을준비하면서 고민으로 머리를 맞대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무대를, 그리고 무대 밖의 삶과 사회라는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3회에 걸친 인터뷰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여러분의 벌판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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