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의 두 번째 이야기로 천샘의 작품 <전사의 땅>에 지대한! 영감을 제공하고, 아프리칸 댄스를 국내에 퍼뜨리며, 페미니스트 무용가로 사방팔방 명성을 떨치고 있는(?) 권이은정과 함께 ‘대담인듯 대담아닌 대담같은 너’를 진행합니다. 권이은정과 천샘은 현재 ‘감성충만 지식저렴 예술가들을 위한 초경량 지식투척 프로젝트!, 오후의 예술공방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올 해로 권이은정이 공방에 합류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천샘은 권이은정이 활발한 여성운동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작년 무용계 미투 사건이 발발한 이후 반성폭력연대가 조직되면서 그동안 어깨 너머로 보고 있던 권이은정의 활동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권이은정의 아프리칸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한 솔로 작품 <나나, 우리들의 어머니의 어머니>,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곱씹어보기 시작하지요. ‘나나’는 베냉 언어로 ‘우리들의 어머니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불의에 맞서 싸우고 할 말은 할 줄 아는 원숙하고 강인한 여성상을 상징하는데요. 천샘의 작품 <전사의 땅>은 권이은정의 작품 <나나>를 보면서 어떻게 그러한 여성상이 탄생할 수 있었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본 작품에 권이은정을 무용수로 섭외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아프리칸 댄스를 작품에 접목해보는 실험의 계기가 되지요. 이제 둘이 마주보면서 그리는 전사의 땅, 치열한 벌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 35회 세계여성의 날 헌정공연: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두 번째 인터뷰:
"대담인듯 대담아닌 대담같은 너!"
권이은정과 천샘이 들려주는 '전사의 땅, 치열한 벌판'
2019. 12월 댄서스라운지
정리: 천 샘, 권이은정
[천샘 왈(이하 천)]: 우선 작품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나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의 시작이자 영감이고 토대였다. 많은 분들이 생소해하실테니 먼저 <나나>의 원작자가 <나나>를 소개하면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좋겠다.
[권이은정 왈(이하 권이)]: ‘나나’는 ‘우리들의 어머니의 어머니’라는 뜻이고, 작품의 시작점은 출산이었다. 출산에 대한 말은 참 많지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참으로 대범하게 안고 가셨던 것을 나는 생색내고 싶었다. 아니, 아무리 생색을 내도 모자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오후의 예술공방에서 같이 읽은 책 김혜련의 <밥 하는 시간>을 보면 동네 할머니께서 엄청 큰 거구의 남자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재롱지다’라고 표현하시지 않나. 덩치가 크던 직함이 높던 젖먹이였던 시절은 빤하니 할머니들 눈에는 다 재롱진 것이다. 작품과 연결하자면, ‘네가 일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그러나 너도 결국은 내가 품어서, 나의 일부를 죽여 가며 키워서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거란다. 그러니 응당 갖춰야할 존경을 표해라. 되도 않는 소리를 하면 참지 않는다.’ 이런 뉘앙스라고나 할까.
[천 왈]: 힘을 쓰는 거구의 남성을 보면서 ‘재롱지다’라고 표현한 대목이 나도 책에서 재미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따뜻한 권위를 품은 모습으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꼰대 뉘앙스 보다는 여성 어른으로서의 온전한 품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그동안 한평생 살아온 내공이 쌓여 그렇게 바라보고 품어 안을 수 있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세월과 함께 쌓인 여성성을 밑바탕에 두둑한 뒷심으로 깔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듯한 대목이었다.
나의 경우,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처음으로 삶에서 고민하게 된 것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서였는데, 처음으로 ‘여성’이라는 단어가 성별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가족제도 안에서 성별에 근거해 부여받은 역할을 지칭하는 단어임을 깨달았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본능적으로 부과된 책임의 무게를 느낀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는 결혼 전, 내 일을 하면서 살아왔을 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고... 지난번 서경선 안무가의 말처럼 ‘여성’이 풀어야할 화두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피드백, 환경. 무대 출산. 애기를 낳고 활동한 언니들의 롤모델>
[권이 왈]: 내가 ‘나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언급했던 키워드가 피드백이다. 피드백. 환경. 롤모델 등등. 내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샘 언니나 가까운 선생님들처럼 아이를 낳고 활동하는 무용수 ‘언니들’에 둘러싸여 있어서다. 그 모습들을 접한 덕분에 나도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동참할 수 있었다. 우리의 할머니, 시어머니 세대에서도 가부장적인 환경과 제도를 거스르고 들이받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면 그분들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다. 가부장제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데 여자라고 교육도 못 받고, 가정에만 고립되어 자기 목소리 내는 여성들도 주변에서 거의 못보고... 한마디로 다른 인생을 사는 것 상상 자체가 안 되는 삶, 내 언어가 없는 삶이었다. 여자가 여자의 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정도로 제도와 내면화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잘해도 참고 잘못해도 참고 알아도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잘못된 것에 화내고, 잘한 것을 ‘생색’내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할머니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까를 상상해보면서 만든 작품이 ‘나나’였다.
[천 왈]: 방금 중요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언어를 빼앗긴 삶. 대안의 언어가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할 것 같다. 지난번 무용계 반성폭력연대 활동에 관련해 은정씨와 ‘오롯_#위드유’의 김윤진 안무가를 인터뷰한 <서울신문> 기사에는 “무용계 권력형 성폭력 다시 없게… ‘몸의 주권’ 찾을 것”(서울신문, 19.12.22자)이라는 제목이 크게 실렸다. 요즘 무용계에서 중요한 이슈는 이 '신체주권'을 중심으로 빼앗긴 언어를 되찾기 위한 구체적인 연대, 즉 작년 미투 사건들로 인해 발발한, 신체주권을 되찾으려는 무용인들의 연대와 성찰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석하기 위해 회복 이전 단계인 빼앗김부터 이야기해봐야 할 듯하다.
[권이 왈]: 언어를 빼앗겼다는 것은 언어를 상상하고 고민하는 기회 자체가 차단되고 나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부여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아까 위에서 말한 자연스러운 ‘생색’의 기회까지 함께 차단되고 만다. 할머니들의 가장 큰 책무였던 살림과 출산의 경우, 모두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다. 도리어 가사노동을 하면 집에서 노는 여자, 출산하다 죽으면 그냥 박복한 여자라며 되도 않는 언어를 뒤집어 씌웠다.
[천 왈]: 사실 기존에 이미 통용되고 있었던 표현의 언어를 빼앗긴 건 아니라서 난 처음에는 좀 헷갈렸다. 기존에 널리 퍼진 언어가 상황으로 인해 침묵당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노동과 권리에 대해 제대로 된 가치 해석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언어가 없었다’고 표현한 것인데... 그렇다면 방금 은정씨가 말한 대로 언어를 빼앗겼다는 것은 결국 여성의 치열한 노동에 대한 적절한 가치 해석이 이제껏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권이 왈]: 그렇다. 여성이 하는 노동에 대해 가치에 대해 가치를 매기는 것은 남성의 몫이었다. 여성이 주체가 되어 언어를 발굴하고 발언을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고, 발언의 주체들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대리격인 남성인 경우가 많았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무용수는 여성이 다수인데, 인터뷰나 무대에서의 발언의 기회는 남성이 갖는 경우가 지배적인 걸 보면 무용계도 다르지 않다.
[천 왈]: 나도 이 부분에서 할 말이 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무용계 반성폭력연대에 참여하면서 문화예술계 전반의 미투운동 상황을 공유하는 라운드 테이블과 포럼에 참여했다. 발제도 하고 자료도 받았는데, 당시 아르코 양성평등 소위원회 소속위원이 발표한 발제문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무용계를 포함하여 아르코 지원사업에 선정된 문화예술계의 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분석 자료였는데, 이 자료를 보면 무용계의 경우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월등이 높지만 지원금 사업에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활동할 경우, 아르코 지원 사업에 선정된 단체의 남녀 대표자 비율을 분석해보면 여성 1명당 남성은 4.7명 꼴로 선정되며 전세는 역전된다. 연출, 기획, 안무를 망라해 조사했을 때는 그 비율이 더욱 올라가는데, 여성 1명당 남성 7.5명이 뽑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성평등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지원 정책’, 강윤주). 이는 여초사회인 무용계에 만연한, 다수의 여성을 차별, 배제하고 남성을 밀어주는 문화적-제도적 흐름, 즉 ‘남동생 업어 키우기’문화가 실은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드러내는 자료였다. ‘남동생 업어 키우기 문화’라는 표현을 이 공연의 기획의도에서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데, 분석 수치가 고통스러울 만큼 명확해서 ‘업어 키우기 문화’라는 표현은 은유가 아니라 명확한 현실임을 나부터 쓰라리게 깨달았다.
[권이 왈]: 무용도 그렇고 미용과 요리 등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여성임에도 권력은 남성이 잡고 서로 밀어주는 분야가 너무 많다.
<회복해야할 언어의 땅. 언어의 확장으로 개척되는 인식의 영토>
[천 왈]: 인터뷰를 하고 발언할 기회가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언어를 회복하고 확장할 기회가 많음을 느낀 것이, 무용계 반성폭력연대가 조직되면서 <한겨레>와 첫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와 몇 개월 뒤 위에서 언급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그리고 1심 선고 직후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활동가들의 몸에 언어가 갑옷처럼 장착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반성폭력 운동에 임하는 개개인의 자세와 사건의 공론화 과정을이끌어내는 연대 행동이 결코 쉽지 않은데, 두 달 주기로 보다 단단해지는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연대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며 성장했는지 느껴졌다. 이 언어의 확산 과정이 무용계 구성원들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느낀다.
[권이 왈]: 지금 언니가 만들고 있는 <전사의 땅>이라는 작품을 보면 우리가 빼앗긴 언어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장면들이 있다. 여성에게 웃음을 강요하는 사회의 단면도 보이고. 하지만 이제 ‘여자는 꽃이니까 웃어야 한다’는 말은 폭력이고, 감정 노동을 강요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에 이름을 부여한 덕분이다. 우리는 자꾸 의심하고 직접 말을 만들어야 한다.
0[천 왈]: 맞다. 말을 확장하다보면 그 말을 사용하는 내 인식의 영토가 확장되고, 그러다보면 인식을 담아내는 몸을 둘러싼 직간접적 물리적인 환경에도 변화의 흐름이 생긴다. ‘신체주권’이라는 단어 하나에 무용계와 시민사회가 이렇게 뜨겁게 환호하고 있는데, 그 단어가 무용인으로서 우리가 빼앗기고 살았던 인식의 지점, 그 본질의 실체를 간결하고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어서다. 신체주권을 인식하면서 여성 무용인들은 작년 한 해 이를 사수하려는 치열한 노력들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작년에 탄생한 무용계의 여성 단체들인 ‘페미플로어’와 ‘약속하는 언니들’이 연 <신체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행동강령 워크샵>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방청연대와 반성폭력 연대: 또다른 지평선의 시작>
[천 왈]: 그런데 뜬금없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은정씨는 미투 사건 재판방청연대에 왜 오셨나? 집행위를 제외한 외부 연대인들 중에서 거의 모든 재판에 참석한 몇 안 되는 분이다. 나와의 얄쌍한 인연으로 왔다고 우기기에는 참여율이 너무 높아서... 하하! 그렇다고 누군가가 ‘무용계’라고 부르는 (그러니까 지원금을 바탕으로 인아웃을 가르는) 좁쌀만한 리그에 속해 있지도 않다. 아마도 은정씨의 경우가 피해자도 모르지만 가해자도 몰랐던 몇 안 되는 경우일 것이다.
[권이 왈]: 여성운동판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난 여성학을 이어 대학원도 들어갔지만 시민사회단체에서 간사를 하다가 우울증을 얻어 단체와 학교도 도망치듯 그만 두고.
여성주의 병원인 살림의료사협에서 일하다가 산재로 일을 멈추고는 재활 후에 이 길(아프리칸 댄스)로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몸은 무용으로 갈아탔지만, 여성주의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다행히 이 춤을 계속 추다보니 여성단체에서 불러주기 시작했다. 집회나 워크숍, 공연 등으로 여성들을 만나고 춤과 여성주의의 연결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었다. 하지만 좀더 직접적인 현장에 있고 싶었다. 물론 피해자도 가해자도 몰랐지만 이번 사건은 나와 무관하지 않았다. 무용을 처음 시작했을 때 짧게나마 겪었던 위력의 기억이 아직도 끔찍하고 그토록 좋아하던 춤을 결국 포기해야 했던 피해자의 억울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게다가 방청연대의 경우, 내가 조직할 필요도 없고 연대에서 일을 꾸려주셔서 어려울 게 없었다. 그냥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계속 참여를 했고 그러면서 글 작업이나 인터뷰로 서서히 발을 담그게 된 것 같다.
[천 왈]: 어쩌면 이번 <찬란한 벌판>에서 무대를 열고자하는 여성 무용인들은 자신만의 야성으로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을 직접 놓으며 나아가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번 인터뷰한 서경선 안무가에게도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렇다면 은정씨는 어떻게 여성으로서 내면의 야성을 회복하셨나?
[권이 왈]: 사실 내안의 늑대, 즉 내 안의 야성을 만난 돌다리는 춤이 놓아준 것이 아니다. 언니들이 놓아준 것이다. 대학에서 만난 언니들이 멋있어서 쫓아다니다가 덕분에 여성주의를 공부하게 되면서 내 안에 꿈틀거리던 늑대의 존재에 대해 깨달았고 세네갈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곳 언니들의 힘에 매료된 것도 크다.
지금 추는 만뎅이나 사바르 댄스는 우연히 만난 것인데 이 두 춤이 손발을 크게 쓰다 보니 여성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게 되었다. 내 몸을 속박하고 춤을 멀리하는 맥락이 여성을 억압하는 맥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성주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면 춤 동작을 가르치는데서 그치지 않고 내 몸의 영역을 넓히는 연습을 하면 마음의 힘도 같이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내 영역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면 자존감과 자신감도 함께 회복된다. 그게 내 안의 늑대를 만나는 길을 돕는다고 믿는다.
[천 왈]: 나의 야성은 춤을 통해 회복한 측면이 크다. 그래서 회복탄력성이 발휘되는 되는 만큼만 작품을 만들고 활동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고... 그런데 지원금을 받으면서 진행한 공연, 사업들이 잘 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 계속 성과를 내고 싶고, 나를 소진시키면서까지 달리고 싶고... 그래서 지난번 인터뷰에서 서경선 안무가가 말한 ‘그 과정 속에서 내게 소중했던 것은 없어지고 무대를 향한 순간만을 향해 달려가는 몸이 남는다’라는 대목이 무척 와 닿았다.
여하튼 달려가고자 하는 욕심이 직진하면서 교환안무가 지원 신청을 했는데, 인터뷰를 한 다음날부터 일주일 내내 후회하느라 잠을 못 잤다. 아이를 떨어뜨려놓고 한 달 이상 외국에 나가 있을 생각을 하니 잠이 안 오더라. 다행히 떨어졌지만 그때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지금 아이가 5살이다. 올해 5살이 된 것이지 작년까지는 4살이었다. 아이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시간적 제약이 있는 작업은 선별하지만, 반면 그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싸우기 위해 일어서는 선택도 했다.
그 연장선 상에서 작년 무용계의 반성폭력연대 활동은 나에게 시민들과 동료 예술가들과의 뜨거운 연대 과정을 통해 내 안의 야성이 두려움에 포섭당하지 않게 해준 시간이었다. 욕심을 향해 달리느라 더 많은 사업에 뛰어들었다면 근거를 알 수 없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안의 야성도 그만큼 망가졌을지 모른다. 학연, 지연, 혈연, 무용계 내 인지도, 네임 발류 등을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홀가분하게 참여했고, 예술가로서 매우 중요한 이 ‘야성의 토대’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 왈]: 마지막 질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찬란한 벌판은 어떤 모습일까?
[권이 왈]: 내가 하나도 안 바뀌어도 되는, 내가 온전히 나여도 괜찮은 곳. 삭발을 해도, 입고픈 옷을 입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곳.
[천 왈]: 창작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다수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늘 이루어지는 곳. 그리하여 회복 탄력성이 좋은 댄스플로어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깔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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