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스라운지에서는 살롱이브닝을 준비하며 마지막으로 이 공연의 기획자이자 <안무자 인터뷰 3탄> 천샘 안무가의 '슬픔속으로'를 올립니다. 이로써 댄서스라운지에서 마련한 [The 1st 살롱이브닝: 'Dance Is Our Weapon! | 올해의 이야기: 팽목의 자장가] 관련 모든 자체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적 지평과 사고를 좀더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술가들의 개인적인 의견이기 떄문에 동의와 반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모든 견해들 속에서 차오로는 여러분의 시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래봅니다.//살롱지기
천샘 안무가 팀별 인터뷰
2015. 3. 10
인터뷰 진행자:
체미정 |
살롱이브닝 무대 총연출
[슬픔속으로]
안무: 천샘
출연:김하람, 박성은, 천샘
1. 안무가님은 현대무용 이전에 다양한 전공을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현대무용으로 돌아선 계기가 있는가?
천샘: 무용은 어려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놀이였다. 미술이나 다른 전공은 훗날 밥벌이를 위해 학위가 필요하겠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무용만큼은 놀이로서의 영역이라 학문적인 접근이나 그 밖의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간섭받고 싶지 않았다. 춤은 미국서 유학하면서 내 유일한 놀이었는데, 그래서 내 춤의 베이스는 현대무용이 아니라 발레와 재즈다. 다만 춤을 추면서 슬럼프가 오는 시점이 있었는데, 그때 현대무용이 어떤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더라. 그런 마음으로 한예종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합격한 후에도 다녀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2. 여러 전공들이 작품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가?
천샘: 작품을 만들 때 영향을 받는다. 내 경우는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다른 전공자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내가 무용에서 받은 이른바 ‘정규 교육’은 예종 2년이 전부다. 나는 무용 작품을 만드는 '기존의 방식'에 익숙치 않다. 그래서 과거 전공이나 그 어떤 무엇을 통해서든 내 안에서 걸러진 주제를 어떻게 작품에 집어넣느냐, 단순하게 그것만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움직임은 현대든, 발레든, 재즈든 장르 구분을 하지 않는다. 어떤 주제에 일정 장르의 움직임이 부합하다면 그 움직임을 부분적으로 갖다 쓴다. 대신 현대무용에서 '포인한다'고 욕먹지 않고 장르 타파에 대한 비판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와 동작의 긴밀성이 강해야 한다.
3.<그을린 예술>과 <불안>의 경우 다소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의 경우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사고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춤이 글보다 상징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이 작품화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현상을 텍스트로 삼는 창작 작업에 있어서 어려움이 무엇인가?
천샘: 안무가들마다 특성이 다른데, 내 경우는 책이 주제의식의 밑바탕을 깔게 도와주었다. 예를 들면, 내가 선택한 책은 <그을린 예술>인데, 이 책은 오늘날 예술의 문제점, 즉 새로움의 표현 기법에만 탐닉하는 현실, 의미 없는 예술상의 남발과 그 안에서 예술이 모색해야할 여러 방향들이 들어 있다. 한 예로 책에는 거대 기업에 대한 예술적 투쟁 사례로서 홍대의 ‘두리반’에 대한 예화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홍대앞에서 태어나 자라서 (두리반 역시 집에서 100미터 거리라..) 자연스레 그 과정들을 접했었다. 그래서 문화 예술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사회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지, 남들보다 조금은 편하게 체험으로 깨달은 게 있고, 책을 읽으면서는 그 사실들이 이성적으로 환기되었다.
4. 작품의 제목을 ‘슬픔속으로’라고 정한 이유와 내용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천샘: 이 제목은 아주 오래전에 정해 놓은 것이다. 예술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슬픔’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내 생각에) 예술의 참 좋은 순기능은 치유적 측면이다. 예술의 영역 안에서 슬픔을 다루는 방식은 개인과 사회에 꽤나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에서 아직 ‘해소되지 못한 슬픔들을 예술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선택을 했든 하지 않았든, 살면서 우리는 한두 번쯤 처절하게 깨지는 경험을 한다. 그 순간들은 쓰라릴 수밖에 없지만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와 인생을 결정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 사회의 품위와 질을 형성한다. 절대로 답이 없을 것 같았던 문제도 수천, 수만, 수억 개의 시도들을 하다보면 자신만의 답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찾은 답은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보편성을 획득한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겪은 처참한 고통에 치열한 답을 찾아가고 계신 유가족분들께 우리가 힘을 실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사 이 모든 노력이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어떤 괄목할만한 성과가 없이 끝난다 한들, 이 분들이 건져 올린 치열한 답은 우리 사회의 자산이 된다. 한때 꽂혔던 표현 중에 ‘고통의 연대’라는 말이 있다. 특히나 이런 문제에서는 ‘고통의 연대’가 형성 되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세월호 문제는 좌파나 우파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가 지닌 품위, 가치를 드러내는 ‘고통의 연대’에 있다. 슬픔과 슬픔이 연결될 때 사회적 위로와 품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역사는 짧지만 부러운 점이 있다면 ‘그라운드 제로’처럼 911 테러가 일어났던 참사의 공간을 완전히 비워, 그 자리에 희생당한 자국민들을 추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월가'같은 금싸래기 땅을 비워놓는다며 누군가는 뭐하라지 않았을까? 한 예로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는 새 건물이 올라갔고, 추모비는 엉뚱하게도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전혀 상관없는 후미진 공원에 세워졌다. 공동체가 구성원의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 그 사회의 품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다.
5.무용수들에게 묻겠다.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길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훈련을 더 많이 배워왔다고 생각한다. 춤이 무기가 되고 춤 동작에 의미를 담는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관련해서
5-1. 안무가로서 작품의 어떤 부분에 메시지가 담겨지는 것인가. 구성, 음악, 무대미술, 동작 등 작품의 요소중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5-2. 댄서로서 주제와 관련해 연기적인 요소나 춤의 구체적인 실현에 염두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가?
김하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춤에 익숙한 편이다. 주로 기쁨을 표현하는 춤을 추어왔고, 슬픔의 춤을 춘 적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춤에 다양한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미적으로 예쁘게만 보이는 춤에는 관심이 없고.. 그걸 전달할 수 있는 어떠한 에너지든 어떤 어그러진 모양이든. 작업하면서 느끼는 것은 감정이 이미 동작 안에 있다는 거다. 동작을 하면서 그 감정들이 내게 들어오는 걸 느낀다. 고정 관념같은 슬픔이 아니라, 슬픔에도 깊고 다양한 언어들이 있는 느낌, 땅에 던져지고 내 몸을 굴리면서 요동치는 에너지들, 그러한 것들이 감정을 계속 생성 시키는걸 느낀다. 저에게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고 어떻게 보여 질까 궁금하다.
천샘: 동작과 춤의 차이를 무용치료에서 배운 적이 있다. 바로 리듬감이다. 동작에 힘을 어떻게 싣는가, 즉 어떤 리듬감을 부여하는가에 따라, 하나는 춤이 되고 다른 하나는 폭력이 된다. 쟈넷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남자친구에게 맞았던 경험을 노래로 만들었는데 라이브 공연에서 이를 댄서들과 춤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데이트 폭력에 대해 충격적으로 깨달았다. 하람이가 동작을 하면서 감정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동작이 지닌 ‘내재적 리듬감’이다. 무언가를 부숴 버려야하는 장면에서는 춤이 아니라 정말로 부수는 듯한 동작의 악센트가 들어가는 걸 선호한다. 이러한 동작에는 진실의 힘이 있고, 그러면 굳이 어떤 부차적 감정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어떤 진실을 몸으로 표현하는 측면에서 그 동작이 지닌 실재성을 최대한으로 드러내고, 이를 관객들이 인지하게 만들고픈 욕망이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부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배 안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표현하고 싶다. 폭력과 춤의 동작적 경계선을 프로페셔널하게 넘나들 수 있는 게 바로 무용수의 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월호의 참상을 무용수의 몸으로 고발해야, 우리의 움직임에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예술이 비판적 성격을 지닐 때, 두루뭉술하게 얘기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상을 받기 위한 예술을 하는 게 아니니까. 다만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내 몫이다. 아름답게 한풀이, 넋두리하는 방식으로 풀어낼 마음은 없다.
6.세월호 같은 가볍지 않은 주제를 춤으로 다룰 때, 춤이 ‘관념화’되어, 춤의 기본적인 ‘흥’의 요소를 잃는다는 우려가 있다. 현대무용이 일반인 관객의 시선을 붙잡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부분 때문이다. 또한 이런 대의를 지닌 주제의 경우, 일반인 관객들을 관객층으로 흡수해야 의미가 있다는 측면이 있다. 이를 위한 안무자님만의 돌파구가 있는가.
김하람: 사실 부담스럽다 그러한 시선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춤에서 아름다운 테크닉을 보고 싶어 하는데, 이번 작업에서는 감정을 탁! 하고 때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관객분들이 보시면서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업하면서도 제가 하는 부분들이 ‘하드코어적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그 안에서 초연해지는 게 제 역할이지만 이걸 봤을 때 너무 부담으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감하면서 보아주셨으면 좋겠다.
천샘: 춤의 리듬감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지루하지 않은 걸 선호한다. 그래서 다루는 주제는 무겁지만 움직임 자체는 음악을 철저하게 타면서 움직인다. 이번 작품에는 바이올린도 등장을 하는데 그 선율을 어떻게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관객들을 몰입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7. 댄서로서 이 번 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박성은: 라이브로 악기를 연주하면서 동작을 같이 하는 게 어렵다. 아주 낯선 것은 아니나 경험이 많지 않은 시도이기도 하고, 그 안에 감정도 실어서 표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많이 어렵다.
김하람: 동작의 악센트가 어렵다. 동작에 집중하면 감정이 나오기는 하지만 내 몸의 발란스를 맞추는 게 어렵고, 또 자칫 감정이 앞서면 악센트가 죽어 내가 내 몸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감정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게 어렵다. 혼자라면 풀어내기 어렵지 않겠으나, 열린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이 본다 생각하면 움츠러든다. 부끄럼이 많은 성격이라 평소 생활에서도 감정표현을 잘 안하는 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춤을 추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내 안에 감정의 편식이 심하고 부딪침이 생기고 결과적으로는 동작이 굳고 호흡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내 움직임이 다 열려야 한다. 그러한 것들이 어렵다.
8.댄서들이 이 작업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경험은 무엇인가?
김하람: 그 동안 춤을 위한 춤을 추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왜 이 동작이 필요한지? 왜 보여줘야 하고? 왜 움직여야 하지? 보는 사람들이 뭘 느껴야하지?’하는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경험하고, 그 열매를 먹어보고 싶다. 내 스스로 춤을 추고 표현함에 있어서 오픈될 수 있는 기회였으면 좋겠다. 문하나 더 열었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성장했으면 좋겠다.
박성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움직인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런 시도에 대한 나만의 언어를 개발했으면 싶다. 아직까지 확신이 서질 못하고 있는데 얼 만큼 나올 수 있을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9.공연을 앞두고 최근에 안산과 팽목항을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천샘: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총기난사가 자주 일어났다. 무고한 시민들이 쓰러졌다. 학생들은 밤마다 촛불을 들고 나와 촛불추도회를 했다. 그때 유학생이었던 난 촛불추도회가 열릴 때, 친구들을 응원했지만 정작 자신은 참여하지 못했다. 내가 외지인, 이방인이라는 생각의 경직성 때문에.. 당시의 내 정서를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바라보게 되더라.
사람들이 내가 팽목항에 다녀왔다고 하니 비장한 무언가를 기대하는데 그렇지 않다. 유족분들은 그 분들의 삶을 열심히 살고계신 거고, 나 역시 내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거다. 꼭 가지 못해도 염두에 두고, 잊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면 기회가 될 때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런 의식은 편안하게 형성되는 게 좋다. 어떤 힘이 들어간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몇몇 고민과, 그때는 차마 설명하지 못할 섬세한 자괴감의 시간들을 거쳐.. 그렇게 조금은 평평하고도 유연한 토대가 삶의 일부로 형성되는 거다. 사실 우리가 그분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만 작은 부분이나마 우리도 함께하려고 한다는 걸 보여 드리는 거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궁극에는 ‘스스로를 위한 움직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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