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의 [혐오발언]
김지정 | 2016 살롱이브닝 안무가
'혐오'라는 단어는 때때로 혐오를 당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평소 여성에게 무시를 당한" 것이 범행동기지만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유롭고 진보적인 집단처럼 보이는 예술가들은 어떨까요? 게이를 욕하고 있으면서도 성적 취향에 '쿨'한 입장이며 인간으로서 '혐오'하지는 않는다는 정치적 단서를 붙이는게 제가 아는 많은 예술가들의 습관입니다. 무용계는 어떨까요? 무용하는 남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처럼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이 희미한 곳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경험한 무용계는 그 어느 곳보다 남성성, 여성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나요?
마리 마츠다는 혐오 발언이 '표적 집단에 놓인 자들의 복부를 강타'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냥 그런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 강타당한 것과 동일한 고통을 준다고 덧붙이지요. (혐오발언을 듣는 것은 갑작스럽게 따귀를 맞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한 사람도 있습니다) 제 의견으론 이것은 많은 경우 사실입니다. 모든 종류의 혐오발언은 아무리 단순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가진 폭력의 역사성과 구체적인 폭력사건들을 상기시키며 청자로 하여금 더러운 기분과 때로는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건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발언의 결과로 겪는 고통을 축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혐오발언의 실패가 비판적인 대응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 혐오발언은 항상 작동한다는 가능성을 잠깐 의심"하고자 했습니다. 즉 혐오발언이 청자가 되는 표적집단에게 항상 고통,공포,침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혐오발언은 많은 경우 "당신이 oooo 인 것에 유죄를 선고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지옥불에 떨어진다, 너네 나라가 해일 피해를 당한 건 이방신을 믿어서다, 니가 나를 먼저 꼬셨다.." 이런 발언들 익숙하시죠? 이 때의 화자는 마치 신(God)과 같은 롤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어떤가요? 혐오발언의 화자는 신도, 판사도, 경찰도 아닌 "관습과 역사 속에서 그 말을 반복하는" 자일 뿐입니다. 청자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일시적이고 나약한 존재이죠.
그리고 표적집단의 힘은, 혐오발언이 발생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성폭력생존자 말하기대회에서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재언급하는 것은 성폭력 자체와 같지 않습니다. queer 라는 용어는 본래의 부정적인 목적과 반대로 인용되어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지요. Black is beautiful 은 혐오집단에게 당황스러운 문구였을 겁니다.
예술의 역할이 여기에 있습니다. 혐오발언을 재인용하고 점유하며, 전시하고 전복하는 가능성이 예술 안에 풍부하게 존재합니다. 예술가는 쿨하고 세련되게 뒷짐을 지고 서서 혐오상황을 관망하고 코웃음이나 치며 어떠한 입장에도 서지 않는 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12월에 있을 댄서스라운지의 살롱이브닝 공연은 인간의 폭력성과 혐오를 소환하는 자리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9월의 서적인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발언] 스터디는 두번째 공연인 <치즈가루 빼고 핫소스 두개> 를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피자 한 판이라고 칠 때, 치즈가루는 우아한 혐오집단을, 핫소스는 혐오상황을 마주하는 예술가로서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차근차근 준비하는 중입니다. 댄서스 라운지 예술가분들의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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