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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살롱이브닝 안무가 인터뷰 1탄]: 천 샘의 '지표동물' (16.8.3)

댄서스라운지 2016. 8. 2. 21:02

 

 

 

[2016 살롱이브닝 안무가 인터뷰 1탄]: 천 샘의 <지표동물> 

인터뷰어: 김하람 | 2nd 살롱이브닝 무용수

16. 8. 3. @댄서스라운지

 

 

[김하람(이하 김)] 우선 올해의 살롱이브닝에 대해서 얘기를 해봐야 할 듯하다. 올해의 살롱이브닝 주제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천 샘(이하 천)] 올해의 살롱이브닝 가제는 '무감각은 범죄다'이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제목을 변경한다 한들 주제의식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살롱이브닝에서 처음 뽑았던 주제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아름답다'는 전제 아래, 무엇이 인간을 아름답게, 혹은 아름답지 못하게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는데, 이를 파고 들어가다 보니 먼저 후자의 질문에 답하려는 '무감각은 범죄다'라는 주제로 세분화되었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예찬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면을 다루어야 그 밝음도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왈] 이러한 주제에 접근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천 왈] 요즘 포털 사이트의 사회면을 보면 끔찍한 사건들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자주 올라온다. 청소년 사이의 집단 성폭행, 가습기 영유아 살인사건, 반려동물 학대 등등.. 인간의 잔학한 면을 십분 보여주는 사건들이 앞을 다투어 올라오는 상황이다. 작년에 살롱이브닝을 끝내고 쉬는 동안, 하도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사건의 숫자를 세며 통계를 매기게 되더라. 도대체 어떤 종류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누가 희생당하고 있는지.. 대부분 여성, 영유아, 청소년 여학생,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 장애인들이고, 그저 사건에 따라 여성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영유아로 타겟만 변할 뿐, 동일한 그룹군이 희생자로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상황이었다. 가위가 눌렸고,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왈] 이번 살롱이브닝 전체의 주제 맥락으로 정한 <무감각은 범죄다> 는 학자 이희원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에 불가분인 성, 육체에 대한 논의가 다각도로 심도 있게 다루어진 굉장히 흥미로운 책으로 알고 있다. 책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살롱이브닝과의 연계 지점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천 왈] 이 책은 내가 7,8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논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상당히 두터운 분량의 논문을 읽고 전율을 느꼈던..(웃음), 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 성을 다루고는 있지만, 좁은 의미의 섹스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 책을 정독하면 인간의 본질로서의 성에 관한 시각, 그리고 이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인간의 양심과, 전인격적 삶에 대한 자세가 바로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성폭력이 만연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기사를 보니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열 명 중 두 명은 성적 폭력성이 괜찮다고 답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만큼 성을 가볍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방식을 당연시하고 놀이화마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sex)을 빼놓고 인간을 논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나의 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는 것은 타인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촉하느냐-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타인의 몸과의 접촉 방식은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폭력이 되느냐, 위로가 되느냐로 문제로 더 나아간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 행동이 위로가, 아니면 성희롱이 될 수 있듯이.

 

[김 왈]살롱이브닝과의 연계 지점이 거기인 듯한데... 폭력과 춤의 차이에 대해 좀더 설명을 부탁드린다. 폭력이 무감각해지는 사회에서 춤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천 왈] 무용 치료 세미나를 듣다가 알게 된 사실은 춤과 폭력의 차이는 바로 리듬감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팔을 움직이는 간단한 동작에 빠른 리듬감을 더해 올려치면 어퍼컷이 된다. 하지만 느린 리듬으로 천천히 늘리면 우아한 발레의 포드브라로 변한다. 이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춤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인데, 이에 다른 리듬감을 가하면 순식간에 폭력으로 돌변하게 된다. 즉 우리는 같은 동작을 폭력이나 춤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춤과 폭력 사이의 거리, 이 거리를 잇는 '리듬감'이라는 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용수는 자신의 몸을 훈련시켜 이 '보이지 않는 끈'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한번쯤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의 몸짓을 통해 관객에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리듬감은 무엇이며, 보이지 않는 내 끈의 상태는 지금 어떠한가.'

팝가수 쟈넷 잭슨의 What about That이라는 노래의 뮤직 퍼포먼스를 본 적이 있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노래인데, 콘서트에서 댄서들은 데이트 폭력의 상황을 춤으로 구현한다. 콘서트에 온 관객들은 노래에 푹 빠지면서도, 동시에 우리 삶 가까이에서 발생하는 연인들 사이의 폭력과 이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폭력과 춤 사이의 경계는 내가 주목하는 것이다.

    

[김 왈] 안무자님이 갖는 사회적 문제와 예술의 접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작업에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가?

 

[천 왈] 위에서 언급한 동작이 지닌 양가성을 파고들어가고 싶다. 폭력이 춤으로 바뀌는 것, 혹은 춤이 폭력으로 바뀌는 것. 폭력과 춤을 하나의 움직임으로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표현하는 리듬감을 만드는 내적 동력은 무엇인가,라는 더 깊은 물음... 내 안의 일련의 질문들을 무용수들과 함께 찾아 들어가려고 한다. 리듬감을 서서히 해체하는 움직임을 하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둔탁해지는 육체의 과정이, 그 안에 내재된 폭력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를 바라고 있다.  

 

[김 왈] 이번 공연에서는 두 명의 안무가가 같은 무용수를 기용한다고 들었다. 방식이 흥미롭다. 상황에 따른 변수가 생길지 모르나 이 방식이 구현된다고 가정할 때 어떤 시각적 효과를 기대하는가

 

[천 왈] 오후의 예술공방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둘(나와 김지정 안무가)이 각각 삼십 분 짜리 작품을 만드는 데 동일한 무용수 두 명을 쓰고, 각 안무가도 서로의 작품에 무용수로 참여한다. 작품 안에서 폭력을 다루는 경우, 아무리 빗겨가려 해도 저 사람은 가해자, 이 사람은 피해자라는 시선이 관객의 뇌리에 머물면서, 선과 악을 규정지어버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동일한 무용수가 각기 완전히 다른 작품에 출현하는 방식을 통해, A라는 작품에서의 가해자는 다른 작품에서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또 가해자로 변할 수도 있고... 그렇게 무용수의 변화하는 역할들이 관객의 시선에 혼란을 주길 바라고 있다. 사실 폭력에 대한 주제는 현대무용에서 심심치 않게 다룬다. 솔직히 진부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떻게 다르게, 즉 도덕적 잣대를 노골적으로 들이대거나 꼰대질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되, 그만큼 강력한 고발성을 갖게 할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살롱이브닝의 '무용수 share, 안무자 cross-over 댄서 출현 방식'은 잘 될 경우, 공연 전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작품성의 측면, 그리고 함께 할 댄서들과 안무가, 또한 관객에도 상당한 임팩트를 던질 것이라 생각한다.

    

 

[김 왈] 작년 댄서스라운지의 첫 살롱이브닝에는[세월호 1주기 추모공연:팽목의 자장가]를 기획했고, 당시 올렸던 안무가의 작품 <슬픔속으로>는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에도 출품되기도 했다. 예상하는 이번 작품, 그리고 살롱이브닝의 행보는 어떤가.

 

[천 왈] 사실 살롱이브닝은 댄서스라운지의 시그니쳐가 되는 공연으로 자리리매김을 해, 그로 인해 라운지의 성격을 확실하게 알리고자하는 목적이 있다. 살롱이브닝의 모토는 ‘Dance Is Our Weapon!’춤은 우리의 무기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춤이 지닌 사회적 역할의 회복'을 라운지는 추구한다. 우리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3시간 동안 벌이는 사뭇 치열한 스터디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는 그동안 모인 고민들을 바탕으로 [세월호1주기 추모공연]을 자연스럽게 기획했고, 공연은 예상치 못한 큰 호응을 얻었으며, 그 중 한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아 SCF에 초청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선순환'의 예이기도 하다.

우리는 작품을 만들 때 그리고 스터디를 할 때 (적어도 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예술의 선순환'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예술은 함께 살아가고 있고, 때문에 이 사회의 그늘에 숨통을 트이는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용계는  이에 적극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작년에 추모공연을 하며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가 던진 '무용계에서 세월호1주기에 맞추어 추모공연을 하는 건 여러분 그룹 하나였어요'라는 말은 아직 내 안에 뼈아프게 남아있다. 올 해 역시 그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젊은 예술가들이 답하려는 목적이 있고..., 살롱이브닝의 행보는 그렇게.. 늘 같을 것이다.  

 

[김 왈] 안무자 워크숍이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진행될 예정인가?

 

[천 왈] 워크숍은 다음 주인 8월 둘째 주 수요일부터 시작해 공연이 올라가는 12월 초입까지, 안무가와 댄서 전원이 한 달에 두 번씩 격주로 워크샵을 이끌게 된다. 워크샵은 공개와 비공개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공개 워크샵에서는 안무가마다 자신이 안무 소스로 선택한 책과 그동안 고민해온 안무기법을 일반에 풀어놓게 된다. 그 달의 마지막 토요일에는 안무 소스로 선택한 책을  오후의 예술공방에서 <안무자 스터디 시리즈>를 통해 발표하고, 작품 발제도 같이 들어간다. 이런 비유를 하긴 좀 거창하지만... 발효빵을 만든 장인이 발효빵 만드는 법을 공개해서 빵의 발전을 이뤄낸 것처럼, 하하하~ 라운지에서 올리는 모든 공연은 안무기법의 공개 워크샵과 함께 진행하여, 이를 통해 다른 예술가들과 창작의 발판을 공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나는 첫 타자인데, 내 워크샵에서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 자기 몸에 구현하고 있는 폭력적 행동을 알아보고, 이를 춤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해보려 한다. 또한 자기만의 폭력적인, 혹은 위로가 되는 움직임을 찾은 후, 이것이 상대의 움직임과 만났을 때에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를 볼 것이다. 자신의 폭력적인 성향, 즉 자기 안의 상처가 어떻게 방어기제로 작동해,  이를 받아들이는 타인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는지를 좀더 객관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