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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민의 자리를 묻다: 오후의 예술공방 〈애조로, 어떤 국민의 길〉 (댄스포스트코리아, 2026. 2월호)

댄서스라운지 2026. 2. 3. 12:03

 


‘어떤’ 국민의 자리를 묻다:

오후의 예술공방 〈애조로, 어떤 국민의 길〉

 

공연비평

Vol.125-2 (2026.1.20.) 발행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오후의 예술공방

 

 

〈장애 여성의 길〉

 

안무가 천샘이 이끄는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이하 예술공방)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현대무용 1세대 안무가들이 공연단체를 꾸려 활동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반세기가 넘어가고, 학교 바깥의 활동에 대해 ‘독립’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설명하는 것이 이제는 어색한 일이 될 만큼 창작 환경도 바뀌었다. 그러나 창작자의 수가 늘어나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공연이 또 그만큼 늘어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은 더더욱 녹록지 않은 일이 되었다.

 

천샘은 ‘예술가 시민’을 정체성 삼아 ‘발언으로서의 작품’을 만드는 데 진력해 온 안무가다. 그는 2015년 세월호 1주기 추모 공연으로 올린 〈팽목의 자장가〉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움직임 X파일: 폭력소환장〉, 〈아직 가 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오늘의 날씨〉, 〈그 여인은 재미난 게 하고 싶었지〉 등 사회적 이슈를 여성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공연을 제작하며 무대를 광장으로 만들어왔다.

 

활동의 주된 무대가 공연은 활발하지만 발언은 제약된 무용계라는 점에서 천샘은 가장 정치적인 안무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무용계에서 발화되는 다수의 사회적 메시지들이 특정성을 소거해 일반론으로 수렴되고자 하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특정성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그의 태도는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천샘의 활동 범위는 공연을 올리는 무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에 참여하고,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위한 예술회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팀 ‘상여자의 착지술’에 합류하며 크리에이션과 액티비티를 연결한다. 특정성에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떻게 벼려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유족의 길〉

 

예술공방의 10주년을 기념해 올려진 전시공연 〈애조로, 어떤 국민의 길〉(25.11.21.-11.23., 댄서스 라운지)은 〈장애여성의 길〉(공연), 〈생존자의 길〉(공연), 〈유족의 길〉(전시)이라는 각각의 제목이 붙은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파트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마다의 무게로 깊은 울림을 남기는데, 무대화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여러 복잡한 맥락이 얽혀 있다.

 

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샘이 2023년 ‘슬기로운 국민체조’라는 타이틀로 진행한 리서치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곱 명의 창작자와 연구자 들이 참여한 4회차의 집담회와 두 가지 버전의 움직임 리서치, 그리고 안무가 천샘과 배우 김지수의 좌담으로 마무리된 이 리서치는 1970년대 후반 ‘국민체조’라는 명칭으로 공교육에 도입된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통해 직조된 ‘국민’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탐구한다. 그리고 이 움직임 수행에서 탈락해 국민이라는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들, 특히 ‘장애 여성’을 본 공연의 중심에 놓고 ‘국민’이 어떤 존재들로 가시화되었는지, 또 반대로 어떤 존재들이 비가시화되었는지 묻는다.

 

그러나 첫 번째 공연 〈장애 여성의 길〉이 시작되면 이 같은 무거운 질문으로 비장해졌던 마음은 금세 머쓱해진다. 20분 남짓한 짧은 공연에서 배유리는 관객들 앞에서 퍼포머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하루의 일부를 잘라낸 듯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는 등 일상적인 가사 노동의 움직임으로 공간을 채운다. 빨래 사이에 섞여 있는 환자복이나 벽에 쓰여 있는 약제 이름에서 일말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 그가 보여주는 담백한 일상의 모습은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일상성은 지난해 예술공방의 여성의 날 기념 프로젝트 〈그 여인은 재미난 게 하고 싶었지〉 중 〈륭: 미미(하게)〉에서 그가 연기한 비혼여성의 삶이 연장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연을 보는 동안 ‘국가는 어떤 국민을 요구하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은 곧 주어가 바뀌어 ‘우리는 어떤 사람을 국민으로 상정하는가’로 이동한다. 비장함이 다소간 덜어졌을 뿐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이 두 번째 질문의 답은 배유리가 보여주는 담담한 일상 속에 있다. 그의 움직임이 재현하는 일상의 단면은 ‘장애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듣자마자 우리가 신속하게 상상해내는 극적인 고통과는 거리가 있다.

 

앞 문단에서 배유리가 전작에서 보여준 비혼여성의 삶이 연장된 것처럼 보인다고 썼듯이 장애여성의 삶이라고 해서 비장애여성의 그것과 다를 이유가 없지만 ‘다름’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상상력은 오히려 ‘다르지 않음’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들을 ‘다름’에 매어놓으려 한다. 그러나 이 빈곤한 상상력으로 ‘다름’에 매이게 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그리고 직전의 문장에서 ‘그들’과 ‘우리’로 가른 이 구별짓기는 매우 임의적이며 또한 매우 오만하기까지 하다.

 

〈장애 여성의 길〉

 

3층에서 진행된 〈장애 여성의 길〉이 끝나고 나면 4층의 〈생존자의 길〉로 이어진다. 방금 하나의 길을 마친 배유리를 비롯해 천샘과 최인혜가 퍼포머로, 신보섭이 뮤지션으로 함께한다. 〈생존자의 길〉은 2024년 상여자의 착지술에서 진행한 공공예술사업 결과공유전시 ‘폭력 너머의 시선’에서 전시의 일부로 선보인 퍼포먼스 〈애조로: 새를 사랑하는 길〉이 작업의 밑바탕이 되었다.

 

상복처럼 느껴지는 흰색 의상을 입은 세 퍼포머가 살아남아 길을 만들며 안간힘을 쓰는 동안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는 최인혜다. 〈그 여인은 재미난 게 하고 싶었지〉 중 〈애프터 유〉에서 언니의 죽음 이후 애도를 이야기했던 그는 이제 슬픔을 딛고 일어나 ‘생존’한 자의 발걸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생존자의 길〉은 〈애프터 유〉의 후일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그로 인한 슬픔도, 자신을 둘러싼 현실은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지만 최인혜는 더 이상 슬픔 속에 잠겨 있지 않고 거기서 걸어 나오기로 한다. 2022년 작 〈오늘의 날씨〉에서 역시 언니를 먼저 떠나 보낸 상실감을 고백한 바 있는 천샘이 묵묵히 그 뒤를 받치며 길을 넓힌다.

 

〈생존자의 길〉

 

〈생존자의 길〉을 보고 나서 먹먹해진 관객들 앞에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것은 〈유족의 길〉이다. ‘기억공간’으로 명명된 전시 공간에는 그동안 우리가 거쳐온 숱한 사회적 참사들이 나열되어 있다. 1971년 명동 대연각 호텔 화재나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테러, 1999년 경기도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등과 같은 오래전 사건들을 환기시키며 참사의 역사를 일별하고, 6.25 전쟁 이후 전쟁고아와 미군 혼혈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시작된 해외 입양 ‘사업’을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로 규정한다.

 

뿐만 아니라 2019년 가수 설리와 구하라가 연이어 세상을 떠난 사건을 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 차원에서 재조명하고, 2021년 변희수 하사가 사망 이후 순직을 인정받기까지 과정을 다시 들여다보며 사회가 어떻게 ‘유족’을 만들어내는지 그 의미를 묻는다.

 

동선이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공간을 각자의 속도대로 따라가던 관객들은 마지막으로 “오늘 당신이 앉은 이 자리가 누군가가 낸 자리였다면, 당신은 어떤 자리를 내고 싶으십니까?”라는 문구와 마주하게 된다. 장애 여성이 생존자로, 생존자가 다시 유족으로 길을 나서는 이 짧고도 긴 여정의 종착지는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어떤 국민으로 살고자 하는가’인 것이다. 다시 한번 천샘의 무거운 질문이 던져졌다.


 

‘어떤’ 국민의 자리를 묻다: 오후의 예술공방 〈애조로, 어떤 국민의 길〉 윤단우 | 춤비평가 (댄스포스트코리아, 2026.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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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민의 자리를 묻다: 오후의 예술공방 〈애조로, 어떤 국민의 길〉 : 댄스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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