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었노라, 춤췄노라, 맞섰노라!
-2018 문화예술인대행진 Blacklist Blacklast,
춤추는 행진의 뜨거운 기록
천 샘
그날, 하늘은 맑았다. 겹으로 입은 내복이 갑갑할 만큼 날씨는 온화했고 미세먼지가 도망간 하늘의 기상은 유려하고 푸르렀다. ‘행진’이라 한다면 왠지 비장해야 할듯한 분위기조차 자연의 차마 거스를 수 없는 달콤한 매력 앞에 무장해제 당했고, 하늘과 바람과 펄럭이는 깃발들 모두는 예술가들의 편이었다. “행진의 기억이 좋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그래야 이러한 상황이 재발한다면 다시들 흔쾌히 참여할 수 있을 텐데요.” 퍼포먼스 감독님이 최종 리허설 때 읊조린 마음을 하늘이 읽은 것 같았다. 만여 명에 달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관리해온 문체부 직원들에게 적법한 징계를 내리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타결된 사안들에 대한 철저한 이행을 요구하며 시작된 <2018 문화예술인대행진 Blacklist Blacklast>는 무용, 연극, 영화, 출판 등 각 분야의 131개 단체와 문화예술인 2,166명이 연대하여 국회에서부터 청와대까지 장장 여섯 시간을 행진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에 알렸다. 그리고 이번 행진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한 무용계는 행진의 시작과 끝에 강렬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무용이라는 예술이 지닌 힘을 우리 사회에 드러냈다. 행군의 마지막, 12미터에 육박하는 검은 휘장을 찢으며 퍼포먼스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을 때, 무용수들의 골반은 녹아내렸고 몸의 마디마디는 피노키오처럼 삐걱거렸으나, 행진을 마친 이들의 소감은 단연코 “좋았다”였다. 그렇게 <2018 문화예술인대행진 Blacklist Blacklast>은 여러 도전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초입에 나오는 문구처럼 한마디로 압축된다. “모든 것이 좋았다.”
블랙리스트와 예술가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만여 명이 넘는 문화예술인들을 관리 대상으로 분류해 그들을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거나 참여중인 사업을 축소 또는 폐지시키며 조직적으로 관리해온 사건을 일컫는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정부의 관리-검열 명단은 예전부터 있어왔다고. 그리고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축소되었으며 그야말로 관리 차원일 뿐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지만 설령 다수의 예술가가 물리적 피해를 입지 않았다한들,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예술은, 그리고 예술가는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블랙리스트는 예술가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고, 예술의 핵심인 자유로운 표현과 발언의 본질에 재갈을 물린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본질은 지원사업의 배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두려움을 조장한다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엄중한 죄책을 물어야 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또다른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제 정권도 바뀌었고 현 집권정당이 재집권에 성공해 연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이것은 정권 유지의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는 박정희가 서거한 지 34년이나 지난 2013년에,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수준까지 성숙했다고 평가받는 시점에서 취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새 내각에 독재자 아버지 시절의 참모였던 김기춘을 불러들였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데 너무도 능숙한 이 늙은 관료는 자신만의 특화된 능력을 3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녹슬지 않은 실력은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예술인만 1만천 여명, 피해 건수만 무려 2670건이라는 숫자로 증명된다. 누군가의 말대로 현 정당이 재집권한다면 10년, 아니 최대한 길게 봐서 20년은 어떻게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리스트를 만들었던 관료들 또한 정부부처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고, 블랙리스트를 원하는 새로운 정권이 창출되면 윗선의 부름을 받아 그 능력을 재발휘할 가능성도 그대로다. 고위급 직원들의 ‘제대로 된’ 징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행진을 준비하던 당시, 우리는 하위기관에 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문체부 공무원에 대한 징계 “0명”이라는 참담하기 그지없는 결과를 마주하고 있었다.
오롯하게, 온 맘으로. 행진의 준비와 긴박함의 시작
나는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의 회원으로 <지금 우리에게 블랙리스트 사태는 무엇인가?>라는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행진 준비에 합류하게 되었다. 연극, 영화, 무용, 출판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분야가 연대한 이번 대행진에서 ‘오롯’을 주축으로 한 무용계는 블랙리스트라는 거대한 흑암의 현실에 맞서는 예술인들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낼 ‘블랙라스트 데이’라는 퍼포먼스를 하기로 결정했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인 김윤규 안무가의 총지휘 아래 30여명의 퍼포머가 암흑 속에서 짓눌리고 으스러져도 일어서는 예술인들의 의지를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단체는 댄스씨어터 틱, 더 무브, 오후의 예술공방을 주축으로, 개인은 SNS를 통해 신청한 댄서들이 합류하여 퍼포먼스 시연영상과 순서 메일을 사전 배포한 뒤 국회에서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이동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오롯의 운영진들은 다른 예술계와의 연대 및 퍼포먼스와 행진 동선 등을 꼼꼼하게 점검하며 그날을 준비했다.
드디어 집회가 시작되고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사태의 심각성을 발언하기 시작했다. 연극계에 이어 무용계의 김서령 공연기획자가 블랙리스트로 인해 엄습했던 고통을 술회했을 때, 듣고 있던 내 가슴은 철렁했다. ‘이번에 바로잡지 못하면 다음은 우리 세대가 되겠구나….’ 그것은 본능처럼 스친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잠시 후 개탄스러운 현실을 상징하는 ‘블랙라스트 데이’ 퍼포먼스가 시작되었고, 검은 마스크를 쓴 무용수들이 앞으로 나아가다 차디찬 바닥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은 천이 이들을 뒤덮자 두 명의 한국무용수가 이들을 위로하는 살풀이를 추었고 살풀이가 끝나자 무용수들은 천 밖으로 나와 천을 짓밟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퍼포먼스의 마지막, 무용수들은 입이 봉인된 검은 마스크를 벗어던졌고 그 모습 위로 현 사태를 규탄하는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선언문이 끝날 때까지 퍼포머들은 하늘로 든 손을 내리지 않았는데, 이는 마치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민중이 봉기하는 마지막 장면, 즉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a song of angry men!“을 노래하며 뜨겁게 정의를 요구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펄럭이는 깃발들과 마스크를 벗으며 드러난 무용수들의 선연한 눈빛, 연신 터지는 프레스 셔터와 그 너머로 울려퍼지는 선언문은 우리가 하나 되어 가야할 그곳을 외치고 있었다.
국회에서 마포대교로, 마포대교에서 청와대로
국회에서의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었다. 연극계에서 준비한 커다란 회색 깃발과 다채로운 솟대들, 박근혜 탄핵촉구집회 당시 쓰인 인형과 조형물들은 다시 한 번 세상으로 나왔다. 다양한 인형들의 행진과 흥을 돋는 풍물패, 그리고 이를 들썩들썩 어깻짓으로 되받는 춤꾼들의 춤사위가 어우러지며, 행진은 흡사 거리예술축제를 방불케 했다. 시위대가 마포대교를 지날 때 즈음, 백 미터에 달하는 화려한 행렬을 본 시민들은 차창을 내리고는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넉살좋은 예술가들은 이에 화답하듯 포즈를 취해주었다. 우리는 춤추며 걸었고 모든 것은 푸르렀다. 마포대교 중간에서 행진을 멈추고 잠시 쉬던 순간, 나는 예술가가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아마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술은 어찌 보면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시위’와 ‘행진’을 함께 바라보고 향유할 수 있는 ‘축제’로 변모시켜 신명나게 나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마포대교 횡단 후, 공덕에서 광화문 그리고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느리고 깐깐한 오름길이 시작되었다. 차도의 한 길을 차지한 이 코스는 매연과 주말의 녹록찮은 차량 흐름 안에서 험난한 걸음을 예고했다. 내가 밀던 인형조형물은 대략 열 사람 이상이 달라붙었는데, 큰 키만큼 하체가 부실해서 도로 배수구마다 여지없이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유독 무용인들이 이 조형물을 많이 밀고 있었다. 조형물의 양 옆과 선두에는 이름을 잘 아는 선후배 안무가와 비평가, 그리고 무용단 소속의 무용수들이 포진했다. 행렬에서 가장 큰 이 인형은 육중한 무게와 연약한 하체로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들었고, 우리는 온 몸으로 이 인형을 떠받히며 뜨겁게 ‘연대’했다. 그것은 우리를 무용계의 위계질서 안에 가두는, 보이지 않는 벽들을 녹이는 몸과 몸의 순전한 연대였다.
5시를 넘겨 광화문에 도착해 휴식한 뒤, 청와대로의 마지막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근처에 도착하자 먼저 청와대 앞에서 농성중인 할머님들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가능성이 있다며 경찰은 더 이상의 행진을 불허했다. 다행히도 국회에서부터 시작된 행진이 부담되었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직접 만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왔고 청와대의 시민사회수석과도 면담 일정이 잡혀, 각각 11월 6일과 8일에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창구가 열리게 되었다. 변화의 키를 쥔 실권자들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값진 수확이었다. 그리하여 행진은 청와대 앞에서 준비한 문화제와 ‘블랙라스트 데이’ 퍼포먼스를 이곳에서 진행하며 마무리되었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왜 그날 거리에 섰는가. 당신과 나는 어떤 예술가이며, 지금 어떤 예술을 꿈꾸는가. 나는 왜 무용하는가. 그날의 행진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한두 질문에 대한 답은 남겼다. 행진에 참여했던 이들은 마포대교를 볼 때마다, 그리고 철저한 이행을 약속한 정치인들의 기사를 볼 때마다, 앓는 골반과 직립보행이 지긋지긋해진 마음을 다독이며 피식 웃었다. ‘춤은 우리 사회에서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적어도 그날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동료들과 함께, 오롯하게 서서, 변화를 갈망한 그날에 춤은 힘이 셌다. 하나 된 마음은 변화의 동력을 만들었고, 우리는 지금 문체부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춤추는 그대여.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인가. 오롯하게 우리 함께 서자고, 벅찬 마음으로 권한다.